그 아기, 낳으면 안 됩니다.
“두 팔다리를 묶고 주사 맞았지. 그럼 배 안에서 꾸물꾸물 하다가 나와버려... 그리고 양동이를 줬어. 직접 (아기를) 가져다 버리라고...”
“차도 안 태워 줬어. 그래서 집까지 걸어갔지.. 내가 살기 위해서면 자식도 버릴 정도였어 그때는.”
1957년부터 소록도에 살던 한센병 환자의 증언입니다. 당시 그녀는 19살이었습니다.
‘살인범과 불치병자에겐 자녀 생산을 원천적으로 금지’ -동아일보 1935년 3월 8일 총독부는 우월한 유전자만 남겨야 한다며 한센병 환자들이 자식을 낳을 수 없도록 수술을 강요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이 정책은 이어졌습니다. 한센병 환자 부부가 아기를 가지면 아내는 강제 낙태를 당했고, 남편은 감금실로 끌려갔습니다.
“야, 아무개 수술하자. 그러면 가야 돼.” -과거 소록도 주민 남편은 심한 매질을 당했습니다. 이어 정관을 아예 끊는 단종 수술을 받았습니다.
“사실 한센병은 치료만 받으면 고칠 수 있고 유전도 되지 않는 병입니다.” -채규태 (한센병 연구소 소장) 우리나라에는 1953년부터 치료 약이 보급돼 완치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마지막일 거야. (1992년도에) 소록도에서 마지막 (단종) 수술을 당했어” -송문종 (한센병 회복자) 하지만 한센병 환자의 대를 끊는 악행은 9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한센병을 앓는다는 이유로 대를 끊은 시대의 비극. 먼저 반성한 건 일본이었습니다.
2006년 일본은 한센보상법을 제정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피해를 입은 한국과 타이완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약 1억원씩 보상했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센병 환자의 강제 수술에 대해 책임져야 할 한국 정부는 사과를 거부했습니다.
“강제성은 없었다. 본인들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 정부 측 한센 인권 변호인단은 2011년 10월부터 정부를 상대로 6건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부는 황당한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7년간의 재판 끝에 지난 15일 대법원은 국가가 강제 수술 피해를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렸습니다.
“강제로 자식을 없앴는데 배상 액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라도 눈 감기 전에 인정받았으니 참 다행이야...” -강모 씨(1960년대 소록도 거주)
전국적으로 소송에 참여한 당시 피해자는 593명. 아직 나머지 5건이 남아있습니다.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모두의 억울함이 풀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