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누가 널 버리고 갔니?”
이제 나랑 같이 살자.” - 고(故) 이수단 할머니 이수단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선물 받은 인형을 꼭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였습니 다.
할머니는 이 인형이 평생 바라던 아기 대신이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19살부터 24살까지 중국 아청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에 계셨습니다. 오전엔 사병이, 밤엔 장교가 들이닥쳤습니다.
“병이 났어. 둥닝에 있는 큰 병원에서 성병을 치료받았어. 죽는 줄 알았지.” - 고(故) 이수단 할머니 그 후로 할머니는 아기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 위안소 근처에 눌러 살게 됐습니다.
“아이고, 답답해… 이렇게 멀리서 우리 동포가 날 찾아왔는데 나는 조선말을 잊어버렸네” - 고(故) 이수단 할머니 오랜 타국 생활로 한국어를 잊은 할머니는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수단 할머니처럼 해외에 남은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과 증언을 기록해온 사진가 안세홍 씨. 무려 20년간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을 돌며 위안부 피해 생존자 60여명을 만났습니다.
“동티모르에서 만난 할머니인데, 알츠하이머가 있어 증언을 들을 수 없었어요. 대신 동생 분에게 과거 이야기를 듣는데 할머니 표정이 일그러지더라고요. 기억은 잃었지만 고통은 남아있는 거죠. 트라우마는 알츠하이머보다도 강했습니다.”
“필리핀만 피해자가 1000여명, 인도네시아가 6000여명이에요. 지금이라도 기록을 남겨 역사로 정립하고 일본에 사과를 요구해야 합니다. 한일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인권문제로 바라봐야 전 세계에 이 문제의 심각함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 안세홍 사진가
피해자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피해자가 여전히 위안소 근처인 국경 변방에 살고 있어 가는 데만 며칠이 걸려요. 가다 사기를 당한 적도 있고요.”
2012년 일본 도쿄 니콘살롱에서 사진전을 열었을 땐 니콘 측 방해로 전시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일본에서 전시를 할 때면 극우단체의 방해를 받곤 합니다.
그래도 안세홍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다시금 각국 변방으로 떠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 분이라도 더 만나려고 자비를 털어 외로운 여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대로 사과받지도 못한 채 ‘겹겹’이 상처만 남은 위안부 피해자들. 그래서 안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겹겹 프로젝트’라 부릅니다.
“작년에만 30명 정도를 더 찾았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분들도 많은데 혼자 하려니 여력이 없어 안타깝죠.” 같이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적은 다르지만 당해선 안 될 똑같은 고통이었으니까요.” - 안세홍 사진가
잊혀선 안 될 고통의 흔적을 기록하는 데 모든 것을 건 안세홍 작가. 스브스뉴스는 그의 ‘겹겹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합니다.
소중한 후원금은 아시아 전역의 위안부 피해자를 기록하고, 알리고, 지원하는 데에 쓰일 예정입니다.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힘을 실어주세요. 후원방법 : 나도펀딩(nadofunding.sbs.co.kr) 후원계좌 : 신한은행 56-100589259924 (SBS 나도펀딩) 문 의 : 환경재단(02-2011-4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