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손으로 말해요
때때로 저희 엄마는 그림책을 읽어주셨어요. 하지만 그 모습이 평범하지는 않았습니다. 동화를 읽어주는 엄마는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셨죠.
저희 엄마는 청각장애인이시거든요. 그림보다 훨씬 생생한 표정으로 호랑이와 사자를 연기해주셨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은 제게 수화를 가르치셨고 저는 손으로 옹알이를 했어요.
저는 코다거든요. 코다가 뭐냐고요? 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줄임말로 청각장애인 부모 아래 자란 비장애인 자녀를 말해요.
부모님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계셨지만 저는 정말 부족함 없이 살았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달랐어요.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거예요.
처음 본 사람이 제 손에 500원을 쥐여주기도 했고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고 훈수를 두기도 했죠.
그래서인지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 저도 모르게 부모님을 부끄러워했던 적도 있어요. 한 번은 좋아하던 남자애랑 걷다가 엄마를 만났어요. 너무 깜짝 놀라서 아주 작은 수화로 ‘그냥 가달라’고 했어요.
나중에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매우 화가 나셨더라고요. 그리고 딱 한 마디 하셨어요. “네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너는 내 딸이 아니다.” - 이길보라 母
화가 나 등 돌린 어머니에게 저는 울며 말했어요.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이 사회가 밉고,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요. 사실 저 스스로한테 화가 가장 많이 났어요.
“입이 아니라 손으로 이야기하는 것뿐인데 뭐가 부끄러워? 나는 농문화가 자랑스러워.” - 이길보라 母 그런 저에게 엄마는 농문화*가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어요. *농문화 : 청각 장애인들에 의해 형성된 청각 장애인 고유의 문화
장애에 대해 엄마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제가 감히 어떻게 부끄러워할 수 있겠어요.
사실 생각해보면 저는 ‘코다’라서 할 수 있는 게 많았어요. 농문화와 청문화*를 넘나들면서 여러 가지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었어요. *청문화 : 농문화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청각에 문제가 없는 비장애인들의 문화를 일컫는다.
제가 ‘코다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쉽게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예요. 이런 걸 ‘코다 프라이드’라고 해요.
그래서 저는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세상에 내놓았어요. 제목은 ‘반짝이는 박수 소리’예요. 청인들을 청각장애인의 세계에 초대하고 환대한다는 의미죠.
영화를 통해 손과 얼굴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몰랐던 사람들이 놀러와 이 아름다움을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입술 대신 손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로 장애에 대한 모든 편견을 없앨 순 없겠지만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싶어요. *이 기사는 이길보라 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구성한 1인칭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