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거’ 병이래 제발 병원 좀 가자ㅠ
식당일 하느라 늘 서 있는 우리 엄마. 밤마다 곡소리 내며 띵띵 부은 다리를 주무르다 까무룩 잠드는 게 일과다. 언제부턴가 오른쪽 장딴지에 푸르스름한 핏줄도 보이는 게 영 찝찝하다.
“참나, 다리 좀 아픈 거로 무슨 병원을 가냐? 일요일에 목욕탕 가서 푹 담그면 돼. 너나 옷 좀 잘 입고 다녀! 멋 부리다 얼어 죽어!!” 병원 가보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혀를 탁 차며 시작되는 잔소리.
그러던 중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야, 나 다리 잘 저리다고 했잖아. 밤에 쥐 나서 깰 때도 있고. 병원 갔더니 내 다리 혈관이 어르신 혈관처럼 늘어났대;; 겉으론 이렇게 멀쩡한데!”
친구가 진단받은 병은 ‘하지정맥류’다. “하지정맥류라고 하면 보통 다리에 핏줄도 튀어나오고 통증도 심한 줄 알았는데 그 정도면 꽤 심각한 거래. 하지정맥류 환자 30%는 겉으로 티가 안 난대;;;”
“유전적 요인도 크고, 오래 서있거나 앉아 있는 직업이면 걸리기 쉽대. 운동 부족이나 몸에 딱 붙는 스키니진 같은 옷 때문에 10대, 20대 환자도 많아지고 있고. 나 이제 스키니진 안 입을 거야ㅠㅠ”
수술 날짜까지 잡았다는 친구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혹시 우리 엄마도?? 진짜 안 되겠다. 엄마 데리고 무조건 병원 가야겠어!’
“따님이 잘하셨네요. 하지정맥류를 가볍게 보고 방치하다 뒤늦게 고생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다리 피부가 딱딱해지고, 궤양이 생길 수도 있어요. 심하면 심장 등 순환계까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 박용범(45) / 부산 청맥병원 외과 전문의 (혈관 외과)
심장까지 안 좋아질 수 있다니;; 하지만 하지정맥류가 다름 아닌 혈액 순환 질병이란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된다.
발에서 심장으로 피가 올라가려면 중력을 거스를 만큼 힘이 필요하다. 혈관을 강하게 압박하는 다리 근육, 피가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판막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런데 판막이 고장 나고 근육까지 약하면?
마땅히 올라가야 할 피가 다리에 머물러 버려 땡땡-하게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여러 안 좋은 증상이 나타난다. 바로 이게 하지정맥류.
혈액이 고여 있으니 다리가 무겁고 자주 저리는 건 기본이다. 이유 모를 두통, 어깨 결림, 심지어 생리할 때 다리가 아프다든가 발기 부전 증상이 있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한 번 망가진 혈관은 되돌릴 수 없어요. 환자마다 혈관 상태를 정밀히 진단한 다음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종아리에 혈관이 보이고 안 보이는 걸로는 알 수 없고 초음파로 혈관 상태를 확인해야 해요.
혈관 상태가 파악되면 치료가 시작될 텐데요, 문제 혈관을 아예 제거하는 수술과 폐쇄하는 시술이 있습니다. 폐쇄할 땐 열 혹은 비교적 간단히 시술 가능한 의료용 접합제를 이용합니다.” - 박용범(45) / 부산 청맥병원 외과 전문의 (혈관 외과)
옆을 슬쩍 보니 엄마 얼굴이 어둡다. 조심스레 엄마 손을 꼭 잡으니, 의사 선생님이 미소를 띠며 말을 덧붙인다. “모든 사람에게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상태에 따라 운동, 압박 스타킹 착용 등 일상적인 관리로 악화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그제야 엄마 미간에 잡혀있던 주름이 조금 느슨해진다. 씩씩하게 초음파 검사부터 하고 오겠다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한다. 아프다고 하면 고집부려서라도 얼른 병원 모셔와야지.
참!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뜨거운 물에 오래 푹∼담그는 목욕은 하지정맥류에 꽝이란다. 오히려 혈관이 확장돼서 피가 더 많이 고여 버린다고;;; 휴.. 엄마, 이제 엉뚱하게 목욕하지 말고 치료 잘 해서 다리 건강 되찾자! -11월 11일 보행자의 날을 맞아, 하지정맥류의 대표적인 증상과 전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1인칭 카드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