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집단발포가 있던 21일 오후부터 시민들은 전투경찰이 외곽 철수하며 두고 간 복장을 챙겨 입었습니다. 기무사는 완전 무장한 시민군의 모습을 재현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사진2) 기무사는 시민을 폭도로 기록했습니다. 아시아자동차에서 시민들이 탈취한 차량들을 한데 모아 컬러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시민군은 차량을 관리하기 위해 번호와 용도를 차에 적었습니다.
사진3) 오른쪽으로 보이는 장갑차는 시민이 아시아 자동차에서 탈취한 것입니다. 캐터필러 방식의 계엄군 장갑차와 달리 아시아자동차의 장갑차는 바퀴가 달렸습니다.시민군의 폭력성을 기록하기 위한 사진입니다.
사진4) 계엄군간의 오인사격이 있던 24일 이후 20사단 병력들은 식별을 위해 철모에 하얀 띠를 두르고 다녔습니다. 전문가들은 사진을 촬영한 날짜가 21일이 아니라 충정작전이 끝난 27일 오전일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사진5) 기무사는 계엄군이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모습을 사진첩에 남겼습니다. 27일 최종 진압작전, 상무충정작전이 끝나고 계엄군이 시가지를 정리하는 모습을 남긴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렇게 군에 근접해 촬영할 수 있는 건 군 관계자뿐이었습니다.
사진6) 계엄군이 무기와 장비를 후송하는 모습입니다. 계엄군이 질서유지에 앞장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첩에 남긴 것입니다.
사진7) 사과 상자를 든 시민이 계엄군에 다가간 모습입니다. 이 사진 역시 계엄군의 평화로운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기무사가 사진첩에 남긴 것입니다.
사진8) 기무사는 외신이 촬영한 사진도 사진첩에 첨부했습니다. 21일 집단발포 이후 시민군이 무장을 했는데 그런 사진만 골라 사진첩을 만든 것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사망자는 군인 23명, 민간인 166명으로 파악됩니다.
사진9) 기자가 촬영한 대표적인 사진입니다.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는 5.18 기간과 직후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까지 모두 가져갔습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폭도'라고 했습니다. 시민들이 대체 왜 무기를 들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진10) 전두환 씨를 정점으로 한 신군부는 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재야 인사들을 전격 연행합니다. 신군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조작하기도 했습니다.
사진11) 빌딩 위에서 시민군들을 몰래 촬영한 사진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측은 편의대원이 숨어서 이런 사진들을 찍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사진12) 빌딩 위에서 몰래 촬영한 시민군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 역시 처음 공개되는 것입니다. 편의대원이 숨어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13) 시민이 알아채지 못하게 몰래 촬영한 사진입니다. 평상복 차림의 편의대원이 시민들에 근접해 채증을 위해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14) 차량에 '김대중을 석방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사진15) 기자가 촬영한 대표적인 사진입니다. 전체 688장의 사진 가운데 이처럼 계엄군이 과격 진압을 하는 모습이 담긴 것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