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방송은 안 하고…
“그래, 진행은 신입이 맡지?”
“네엡!!!” 군기 바짝 든 신입은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실상은 달랐습니다. ‘진행병’ 걸린 아나운서 5명이 모였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니,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럼 다음 주제는 이걸로 하죠.” “선배님들∼ 똑똑? 저기요? 저 진행 좀….”
입이 쉴 틈 없이 움직였습니다. 정규 방송보다 더 신났냐는 PD들 푸념도 들려왔죠. “아나운서는 자기 의견을 내기 힘든 존재예요. 이미 틀이 잡힌 방송에 투입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거든요.” - 곰순
“기획 단계부터 아나운서 주도로 시작하는 방송은 회사 내에서 거의 최초입니다. 아나운서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펼칠 마당을 만든 셈이죠.” - 곰순
아나운서는 말 한마디가 두려운 자리입니다. 아나운서로서 전달력 있는 발음, 중립 유지하기, 어법에 맞는 표현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쓸데없는 인터넷 기사가 나면 안 된다.” 내 생각을 담은 발언도 주의해야 했습니다. 심의에 걸릴만한 발언인지 고려해 자기검열은 필수였죠.
그래서 ‘음지’에 만든 비밀 아지트. 팟빵 ‘아나콘다’ 여기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알리지 않았죠.
이름도 비밀로 했습니다. 계급장 다 떼고 ‘닉네임’을 부르기로 했죠.
“방송 끝났는데도 얘기는 안 끝나서 30분이나 더 이야기하다 갔다니까요.” - 막내 꿀단지 ‘선배’라는 호칭을 떼다 보니 30년 대선배 국장과 2년 차 사원이 언쟁을 벌입니다.
이 다섯 아나운서의 수다 방송은 시작 2주 만에 카테고리 방송 순위 38위까지 올랐습니다.
가끔 이런 메시지도 받습니다. 익명이라고 우겼는데 목소리를 숨길 순 없나 봅니다.
청취자분들도 아시더군요.
그래도 계속 숨길 겁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유일한 곳이거든요. 제가 누군지는 쉿, 비밀로 해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