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가 받은 상
엄숙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빈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곧 한 남성이 다가와 의자에 무언가를 내려놓습니다. 그가 둔 것은 노벨평화상 상장과 메달입니다.
“류샤오보가 중국의 인권문제를 위해 오랜 기간 비폭력 투쟁을 해온 공로를 인정해 이 상을 수여한다.” - 노벨 위원회 이 빈자리를 채워야 했던 주인공은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였습니다.
“이 사안을 중국의 내정간섭에 이용해선 안 됩니다.” -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 하지만 그는 당시 교도소에 수감돼 있어 상을 받으러 올 수가 없었습니다. 중국 당국은 아내 류샤와 가까운 친척, 지인도 가택연금*시켜 대리 수상마저도 할 수 없게 했습니다. * 가택연금: 국가에 의해 자신의 거주지에 감금되는 형벌
수상 소식을 보도하는 외국 언론 사이트의 접근도 차단했습니다. 그에 관한 모든 뉴스는 계속해서 지워졌습니다.
‘중국 민주화의 별’ ‘중국의 만델라’ 류샤오보의 별명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1989년, 중국에서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류샤오보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귀국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서 열심히 활약하며 평화적 해결을 이끌고자 했습니다. 그 후,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습니다.
당시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해외로 망명했지만, 류샤오보는 계속 중국에 남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체제를 비판한다” “언론, 집회, 결사,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 “사회보장 시스템을 구축하라” 2008년에는 ‘08헌장’을 통해 중국 정치의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국가권력 전복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래서 노벨상 시상식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던 지난 5월 말, 그는 구금 중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50여 일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입원 후 36일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준 부인 류샤에게 “잘 사시오”라는 말을 남긴 뒤였습니다.
“관련 법률과 정책에 따라, ‘류샤오보’ 검색 결과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는 계속 지워졌습니다. 인터넷에서 ‘류샤오보’나 그를 추모하는 내용이 모두 차단됐을 뿐 아니라,
“류샤오보가 포함된 문장이 전송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아서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진짜 전송이 되지 않아 놀랐다.” - 중국 대학생 B(23) 씨 중국 포털사이트와 SNS에서는 류샤오보와 부인 류샤의 이름이 포함된 문장은 전송이 금지되기까지 했습니다.
가족들의 의사와 북방지역 관습에 따라 류샤오보의 시신을 오늘 아침 화장했습니다.” - 장칭양 (션양시 정보국 대변인) 숨진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화장 처리한 것도 3일장 풍속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중국 정부에 의해 지워지기만 했던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 류샤오보.
하지만 그에 대한 추모의 마음, 그가 세상에 남긴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