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누구보다 많은 세상을 보여줄게
“손을 쓰기엔 너무 늦었어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 보며 환하게 웃던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요.
스무 살이 되던 작년 추석 주말. 엄마는 급성 뇌경색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엄마가 서 있던 부엌, 같이 웃었던 거실 소파, 심지어 내 방 안까지 엄마의 흔적은 집 안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문득 엄마와 했던 약속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나도 이제 어른이니까, 돈 많이 벌어서 엄마가 못 갔던 해외여행 보내 줄게!”
그 약속이 머릿속에 맴돌아 몇 날 며칠을 후회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가까운 곳 어디라도, 함께 다녀올 걸 하면서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떠나보자.’ 그렇게 엄마와 저의 첫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엄마를 그린 그림과 배낭 하나만 들고 떠난 첫 번째 여행지는 유럽. 엄마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거리를 거닐며 산책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런던 다리에서 자유여행을 온 한국인 모녀를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 사람이라 반가웠지만…
모녀가 지나간 자리에 혼자 남아 한참을 울고 말았습니다. 부러웠습니다.
그날 저녁, 피곤했던 탓이었을까요? 평소보다 숙소에 일찍 들어와 잠들었습니다. 그때 꿈속에서 엄마가 나타났습니다.
엄마는 평소 입지 않았던 치마를 입고 절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엄마에게 말을 걸자 꿈에서 깨어났고, 눈가에 흐른 눈물을 닦을 새 없이 곧장 아빠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빠. 나 꿈속에 엄마가 나왔어.” “그렇구나… 엄마가 너랑 여행 가서 참 좋은가 보다.” 그때야 비로소 실감 났습니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왔다는 것을요.
그 꿈을 꾼 뒤로 모든 여행이 순조로웠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엄마를 그린 그림을 잃어버렸다. 난 더 이상 엄마를 잃기 싫은데, 인제 그만 엄마를 잊으라는 건가?” - 2017.01.02 런던에서의 기록
하늘이 노랬습니다. 엄마를 또 잃었다는 사실에 너무 슬펐습니다.
배낭 안에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는 여분의 도구마저 없었습니다.
“색연필을 빌려 엄마를 다시 그렸다. 가위가 없었지만, 연필깎이에 있던 면도칼을 풀어 겨우 잘랐다.” - 2017.01.02 런던에서의 기록 다행히도 그곳에서 만난 인연 덕분에 엄마와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도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올해 겨울엔 아빠도 함께 떠날 계획입니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에게 이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아직 보지 못한 게 너무 많은 우리 엄마. 엄마, 나는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여행을 다닐 거야. 우리 다음엔 어디로 갈까?”
스물한 살 서예지 씨는 작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여행 도중 엄마에게 썼던 편지를 책으로 만드는 겁니다. 부모님과 함께 어디든 떠나라는 말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이 기사는 서예지 (21)님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1인칭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