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난을 구경하신다고요?
공장에서 일하는 나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상훈을 만났다.
돈을 아끼기 위해 나와 상훈이는 같이 살게 됐고 우리는 서로 의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훈이가 내게 고백했다. “나는 사실 부자야. 대학생이기도 해. 아버지가 방학 동안에 어디 가서 고생 좀 실컷 하고 돈 귀한 줄도 알라고 하셔서 일한 거야.”
맙소사. 이제부터 부자들 사회에선 가난 장난이 유행할 거란다. 그가 떠난 후, 난 상훈이가 가난마저 훔쳐갔다는 것을 비로소 느꼈다.
이 이야기는 故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 <도둑맞은 가난>의 내용입니다. 1975년에 발표된 이 소설과 비슷한 이야기가 2017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서울시에 있는 한 구청이 쪽방촌을 대상으로 대학생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쪽방촌에서 2박 3일간 생활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지역 주민들의 어려움을 공감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학생들이 갑자기 우리 집 옆으로 와서 내가 먹고 자고 하는 일상들을 관찰하는 거잖아요. 그냥 어려운 곳에서 한번 살아봤다고 하는 단순한 체험 거리로 그치는 거죠." -박사라 (홈리스 행동 상임 활동가) 가난의 상품화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게다가 주민들은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이 주민들 모르게 진행됐다며 크게 반발했습니다.
"없는 사람들 체험을 한다, 그게 말이 되는 건가요." -주민 A씨 "이 동네가 거의 다 수급받는 분들이에요. 대학생들은 여기를 잠시 체험한다는 건데….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주민 B씨
“대학생들이 하룻밤 정도 자면서 이분들이 이렇게 어렵게 사는구나… 자기네한테 도움이 될 거란 말이에요. 도시락 봉사, 도배 봉사, 물 나눠주기 봉사 … 봉사하는 거죠.” - 관할구청 관계자
관할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을 불편하게 할 의도는 없었고 좋은 취지로 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구청은 체험 프로그램을 취소한다고 밝혔습니다.
2년 전, 인천 괭이부리마을에서도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취소된 적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기획자들은 이건 굉장히 휴머니즘적인 것이라고 보는 거죠. 결국은 사회적인 강자가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 박동현 (사회심리학 박사)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은 주민들에게 상처만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