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소시지 아니지?
안녕하세요. ‘옛날 소시지’ 입니다. 저는 요즘 들어 제 정체성이 의심받고 있어요.
‘소시지 맞아?’ ‘흐물흐물하고 텁텁해.’ ‘식감이 이상해…’ 소시지인 저에게 자꾸 ‘소시지 맞냐’라는 거예요…
“옛날 소시지는 소시지가 아니라 어묵입니다. 소시지 모양에 돼지고기 향을 덧댄 일본식 찐 어묵입니다” - 황교익 칼럼니스트 심지어 소시지인 척하는 어묵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니까요?
하지만 저의 정체는…
어묵도 소시지도 맞아요! (찡긋★)
정식 명칭은 ‘어육+소시지’. 생선살과 다양한 고기, 전분을 사용해 돼지고기와 비슷한 맛과 풍미를 느끼게 한 거죠.
이렇게 정체성 혼란이 생기게 된 건 제 ‘탄생 비화’ 때문이에요.
때는 바야흐로 1963년, 제가 태어나기 직전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 여건은 좋지 않았어요. 돼지고기가 아주 귀하고 비싸게 여겨져 부유층을 제외하곤 잘 먹지 못할 정도였죠.
그때 한 회사(당시 평화상사)가 일본에서 가공 기술을 들여와 저렴한 가격에 돼지고기 맛을 즐길 수 있는 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당시 제 인기는 상상초월 했어요. 집집마다 식탁 위에 수시로 제가 올라왔고,
학교에 도시락 반찬으로 들고 오면 젓가락 전쟁을 치르기 일쑤였죠. ‘옛날 소시지’, ‘분홍 소시지’. a.k.a 최고의 도시락 반찬이었죠.
게다가 절 찾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매일 이른 아침마다 공장 앞에 줄 서 있었어요. 어느 정도 인기였는지 실감 나시죠?
그런데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 인기는 시들해지기 시작했어요.
‘줄줄이 소시지’ ‘수제 소시지’ : 경제 발전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자 순 돼지고기로 만든 고급 소시지를 찾았기 때문이에요. 솔직히 제가 먹어도 맛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전성기 시절, 그대로의 특색을 살려 제 본연의 맛을 지키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 5년 사이 옛날 향수를 그리워하는 코딱지들이 저를 찾아준 덕분에 요즘 추억의 도시락 반찬으로 나오고 있어요!
고급진 소시지가 갈수록 많아지지만 기죽지는 않을래요. 저는 맛보다 추억을 소환하는 음식이니까요.
제 얘기를 듣고 나니 배고프신가요? 그럼 오늘 저녁 오랜만에 달궈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빙∼ 둘러서 계란 물을 듬∼뿍 묻힌 옛날 소시지 반찬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