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도 엄마가 됐어요
1971년 7월, 신촌 파출소 앞에서 경찰 아저씨가 울고 있던 저를 발견했어요. 생후 3개월로 추정되던 저는 이름 없이 버려져 있었죠.
저는 곧 보육원에 맡겨졌고 김진달래라는 이름이 생겼어요. 제가 태어난 때가 봄이라 꽃 이름에서 따왔대요.
9개월 후, 저는 스웨덴으로 입양됐어요. 예시카 폴피에르라는 두 번째 이름을 가지게 됐죠. 새로운 이름을 주신 양부모님은 저를 사랑해 주셨어요.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늘 있었어요. 저희 마을에는 동양인이 몇 명 없었어요. 게다가 입양아라는 점, 때문에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느낀 적도 있었죠.
하지만 스웨덴은 저를 따뜻하게 안아줬어요. 그러면서 이런 고민도 자연스럽게 없어졌죠.
“변화를 바란다면 정치에 참여해야 해.” 부모님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항상 집에서도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을 했죠. 그러다 보니 정치인이 됐어요.
18살 때부터 온건당 청년 조직에서 활동했고 35살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어요. 저는 이번에 3선째인데, 2015년에는 중도당 원내대표가 됐어요.
그리고 얼마 전, 저는 한국을 방문했어요. 한국 출신 국회의원으로 세계한인정치인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죠.
한국에는 두 번째로 오는 건데, 이번엔 친부모님을 꼭 찾고 싶어요.
아이를 낳고, 친엄마 생각이 많이 났거든요. 아마 엄마는 제 행복을 위해 고민했고 행동하지 않으셨을까요?
친엄마를 이해해요. 그래서 원망하지 않아요. 부모님을 만난다면 꼭 말하고 싶어요. 정말 고맙다고, 그리고 저는 스웨덴에 가서 행복하게 살았다고요.
한국에 계신 엄마, 아빠를 꼭 만나고 싶습니다. (이 카드뉴스는 예시카 폴피에르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인 1인칭 시점의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