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사진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우리 조상이 즐겨 하던 상투머리인데 상투를 풀면 가운데 머리가 텅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외국인처럼 우리 조상도 상투를 틀 때 가운데 머리가 ‘휑∼’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럴 리 없다는 반론도 제기됐습니다. 부모가 물려준 털끝 하나 소중히 여기던 당시 유교사상과도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심지어 상투를 자르라고 내려진 단발령에 유생들이 심하게 반발했던 이유가 … 실은 이 ‘텅빈 머리’가 창피해서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너 그럼 지금까지 정말 ‘진짜 상투’를 하고 다닌 거였어??
‘속알머리’ 박박 밀어내고… ‘주변머리’ 돌려서 상투를 틀잖아. 그건 가짜 상투고, 너처럼 그냥 상투를 트는 게 진짜 상투지.
“ㅋㅋㅋㅋㅋ네 맞습니다. 실제로 가운데 머리를 밀고 주변머리로 상투를 하는 게 유행이었죠.“ - 주강현 민속학자 확인 결과, 속알머리를 밀고 상투를 트는 관행이 실제로 조선시대에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조상들은 상투를 트느라 적잖은 고생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한 여름 두피에 통풍이 잘 안 돼서 ?많은 두피질환을 앓기도 했어요. ?민간요법으로 가운데 머리를 밀었죠..” “머리 숱이 많은 이들은 상투 틀기가 ?쉽지 않아 가운데 머리를 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작게는 500원 짜리 동전 크기 만큼 크게는 손바닥 크기 만큼 잘랐습니다.
하지만 모두 그랬던 건 아닙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사상을 중시하는 유생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머리를 자르지 않고 상투를 틀었습니다.
1895년 고종이 단발령을 선포했을 때 많은 유생들이 강하게 거부한 것도 이 유교사상 때문입니다.
단발령을 거부하는 유생이 많자 경찰은 가위를 들고 다니며 상투를 강제로 잘랐습니다. 그렇게 상투머리는 사라졌습니다.
우리 조상의 상투 아래 감춰진 속알머리는 엄격한 유교 문화 속에서도 실용성을 추구하던 우리 조상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