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여의도의 한 대중목욕탕에 나타난
한 남자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목욕탕에 간 남자는 바로 16대 대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당선자였습니다.
언론들은 당선자의 파격 행보를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2002년 12월, 노 당선자는 전용기가 아닌 일반 비행기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숙소도 작은 민박용 펜션을 택했습니다.
당시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그의 파격 행보가 경호상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건호 선배입니다.”
“우리 아들, 잘 좀 봐주십시오”
2002년 12월, 장남 노건호 씨의 조촐한 결혼식에서 대통령이 아들의 직장 상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것도 화제에 올랐습니다.
“청와대 입성 이후에도 보좌관들과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어디서든 토론하겠다.”
국정 운영은 더욱 파격이었습니다.
번거로운 절차는 건너뛰었고, 부처별 업무보고도 토론식으로 바꿨습니다.
장관 인선도 ‘국민참여방식’을 전격 도입했습니다.
그러자 일각에선 대통령 리더십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노 당선자의 실용주의적 시도들은 보수적인 사람들에겐 매우 적응하기 힘들며 불안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실험과 파격은 인기영합이나
포퓰리즘으로 흐를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 OO신문, < 盧스타일 '파격'>, 2003년 2월 24일
‘불안하다. 감성적이다. 걱정된다’는 질타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리더십 위기론까지 대두됐습니다.
당시 유시민 의원은 이를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 당선자는) 기성의 권력 문화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낯설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 각도에서 드러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 그런 스타일의 리더라는 것을 인정해 줄 것이다.”
- 오마이뉴스, 유시민 인터뷰 中, 2003년 01월 09일
그런 가운데 이를 지켜본 국민은 자기도 모르게 한 가지 생각만은 확고하게 갖게 됐습니다.
“아, 대통령도 그냥 사람이구나.”
노 대통령 이후 지도자는 그 같지 않았습니다.
자유로운 토론보다는 잘 준비된 기자회견을 선호했습니다.
청와대에서 일어난 일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습니다.
급기야 국가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적이 논란이 됐지만 끝까지 감추려고만 했고 국민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일, 국민들은 다시 국민 곁으로 다가가겠다고 천명한 후보를 19대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청와대를 시민 공간으로 내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광화문 광장으로 집무실을 옮기고 대통령의 24시간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보다 더욱 파격적인 공약이었지만
이번엔 그 누구도 대통령 권위가 실추됐다고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이 그만큼 달라진 겁니다.
‘대통령다움’에 대한 새 역사를 쓴 인물이 남긴 이 말은 이제 진짜 현실이 됐습니다.
“저 멀리 높은 곳에 있는 권력자가 아니라,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여러분이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곳에 있겠습니다.”
- 故 노무현 16대 대통령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