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지금은 네가 최고니까!”
2007년 고교야구 결승전 9회 말. 투수가 젖 먹던 힘을 다해 공을 뿌립니다.
“딱!” 상대 타자가 받아 친 공이 1, 2루간을 갈랐습니다. 끝내기 안타. 승리한 광주일고 선수들은 마운드로 몰려나왔습니다.
그 환호 속에서 패전투수는 외로이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투수의 이름은 이형종.
이 일로 ‘눈물 왕자’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실력을 인정받은 이형종 선수는 2007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LG트윈스에 입단했습니다. 계약금도 무려 4억3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팔꿈치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두 번의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기나긴 재활 끝에 2010년 5월16일, 프로 데뷔 첫 선발 경기에 출전해 5이닝 2실점으로 막아내며 깔끔하게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또다시 찾아온 팔꿈치 통증, 한때 최고였던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결국 그는 야구를 포기했습니다.
이형종 선수는 골프에 도전했습니다. 금세 두각을 드러내 3개월만에 70타수에 진입했습니다.
하지만 세미프로 테스트에서 한 타 차이로 프로진입에 실패했습니다. 다시 도전하려 해도 골프 배우느라 돈을 다 써버렸습니다. 또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호프집,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야구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줄 알았던 청년은 냉정한 세상을 겪으며 다시 야구를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구가 정말 간절했습니다.
간곡히 부탁해 육성선수 신분으로 다시 LG에 입단했습니다. 그런데 또 어깨가 아파 수술 선고를 받았습니다. 세 번째로 좌절한 순간, 그는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결국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글러브를 내려놓고 배트를 잡았습니다.
결국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글러브를 내려놓고 배트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그에겐 야구 밖에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연습장에 나와 코치가 말릴 만큼 지독하게 배트를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타자 3년차인 올해 드디어 주전을 꿰찼습니다 리그 전체 2위의 타율을 뽐내며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형종! 이형종!” 요즘 이형종은 팬들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물끄러미 관중 한명 한명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이렇게 팬들과 함께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습니다.
마운드에 흘렸던 눈물은 그리고 땀방울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의 10년이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