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내려고 매일 10시간 걷는 남자
“또 걸어오셨어요? 집에서부터?” “알람 시계도 아니고 매일 칼 같으시네.”
전남 담양과 광주를 연결하는 도로. 갓길도 없는 길에서 한 남자가 위태롭게 걷고 있습니다.
어딘가 좀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에 바지 뒷주머니에는 무언가 두툼한 게 들어있습니다.
꼬박 5시간 동안 30km를 걸어 도착한 곳은 광주의 한 고용센터입니다. 그는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그것’을 주섬주섬 꺼내 놓습니다.
그는 매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그런데 왜 흔한 버스는 안 타고 굳이 걸어서 다닐까요?
“몸도 빨리 나아야 하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걷기 시작했어요.”
24년 전인 1993년, 윤용수 씨는 군 제대를 5일 앞두고 휴가를 나왔다가 안타까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으로 뇌병변 장애 3급 진단을 받았습니다.
“비가 억세게 쏟아져도 가야 한다고 난리예요. 저 고집을 누가 꺾나...” 부모님에게 짐이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같이 일자리를 구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많이 벌지 않아도 계속 일할 수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세상의 벽은 높았습니다. 담양과 광주를 오간 지 20년이 넘도록 든든한 일자리를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매일 밤 자기소개서를 고쳐 쓴다는 그는 집안일과 바깥일을 도맡아 하시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너무 크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광주에 머물 수 있게 됐습니다. 사연을 접한 한 장애인 보호센터 원장이 윤 씨에게 숙소를 제공한 겁니다.
그리고 작지만 소중한 분리수거 아르바이트도 하게 됐습니다. 이제 그는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독립해 살 수 있는 작은 희망을 얻었습니다.
“(사고 전) 보너스 받은 날 아버지께 술 한두 병 사다 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거든요. 지금은 불효 자식이죠. 돈을 쓰기만 하니..” 그의 소박한 꿈은 월급을 모아 부모님께 제대로 된 옷 하나 해드리는 것입니다.
“내일은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계속 이렇게 생각하면 분명 잘 될 거예요.” 그는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