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조태오
옛날에 '서달'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판서였고, 장인은 좌의정이었습니다. 그는 금수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달은 한 아전*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 화가 났습니다. (*아전 : 조선 시대 하급관리)
서달은 그 아전을 찾으라고 했고, 그의 종들은 엉뚱한 아전에게 행패를 부렸습니다.
"어떠한 사람인데 이렇게 묶어놓고 때리느냐" -표운평/조선왕조실록 이때 표운평이라는 자가 지나가다 이를 지적했습니다. 순간 표적이 바뀌었습니다.
표운평은 서달 앞에 끌려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달은 수하들을 시켜 그를 참혹하게 때렸습니다.
이튿날 표운평은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바로 고발했습니다.
'서달이 주장하여 때리게 한 것으로 조서를 작성하여 감사에게 보고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최초 조서대로라면 서달은 살인교사죄로 중형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서달 뒤엔 강력한 '빽'이 있었습니다.
'황희가 판부사 맹사성에게 부탁하여 원수진 집과 화해를 시켜 달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바로 서달의 장인인 '황희'와 그의 절친한 벗인 '맹사성'이었습니다.
"우리 고을의 풍속을 아름답지 못하게 하지 말라" -맹사성/조선왕조실록 황희의 부탁으로 맹사성은 피해자 표운평의 형에게 뇌물을 주고 회유했습니다.
서달의 아버지 서선도 고을의 현감과 조서를 작성한 감사를 직접 만났습니다. 서달이 외아들이니, 살려달라 애원합니다.
황희와 맹사성, 그리고 서선에게 매수된 이들의 압력에 표운평의 아내는 끝내 사화장*을 써주었습니다. (*사화 :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당사자끼리 화해함.)
'조서를 뒤집어 만들어 서달을 면죄되게 하고 죄를 종에게 돌리어 감사에게 보고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일사천리로 조작된 조서는 7개월 만에야 임금 '세종'에게 보고됩니다.
조서를 꼼꼼히 살펴본 세종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습니다. 묻힐 뻔한 사건은 결국 세종의 명으로 재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좌의정 황희와 우의정 맹사성은 관직을 파면하고 판서 서선은 직첩을 회수하고… 서달은 장 1백 대에 유 3천 리를 속으로 바치게 하고…' -조선왕조실록
재수사 결과, 서달은 곤장형에 처해지고 황희와 맹사성을 비롯해 무려 14명이 파면당했습니다.
6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제2, 제3의 서달은 잊혀질만 하면 나옵니다. 다만 세종과 같은 지도자가 없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