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헴, 조선 시대 혼밥러들
"크∼이 맛이야!!"
"피디님…설마 지금 숟가락 담근 거예요?" "그냥 좀 먹어. 우리만의 ‘정’ 문화 잖아. 같이 먹는다고 죽지 않아."
"맞아요, 같이 먹는다고 죽는 건 오버죠. 헬리코박터균을 공유할 뿐이지." "그만해. 안 그럴게. 이 정 없는 놈아."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정, 정 하는데. 찌개 같이 떠먹는 거, ‘정’때문이 아니예요." "우리만의 정이 담긴 전통…아니야? 왜 그렇게 진지해?"
"우리가 정이라고, 전통이라고 오해하는 ‘같이 먹기’는 일제 강점기 이후에야 생긴 문화예요."
"우리(조선)의 식사습관은 중국사람보다는 일본사람에 더 가깝다. 각자 자기의 밥상과 밥그릇, 국그릇을 따로 가지고 있다. 우리가 중국사람보다 병에 훨씬 덜 걸리는 이유이다. 모든 식사 시중은 따로 받는다.” - 책 ‘아리랑’ 中/ 김산, 님웨일스"
“조선 시대에는 독상을 두고 제각각 자신만의 밥상으로 먹었으며, 이는 평민들의 삶까지도 적용 됐을 것으로 보인다” - 황교익 / 맛 칼럼니스트
"조선은 전통적으로 ‘독상’이 보편적이었어요."
"여럿이 한 상에 차려 먹는 ‘두레상’ 개념 자체는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거죠. 유교 문화 때문에." "그럼?"
“일제가 1920년부터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해 많은 양의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농사짓는 농민들조차 쌀 부족으로 고통받았다” -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中 /김육훈 "국민의 생활이 어려워지니까 독상 문화가 없어지기 시작한 거지. 나라에서 없애도록 장려하기도 했고요."
“독상 제도를 버리고 전 가족이 한 밥상 머리에 모여 앉어서 화긔애애한 중에 가치 먹으면 곤난한 점이 없을 것이다.” - ‘외상을 절대 폐지 가족이 한 식탁에’/ 1936년 1월 1일 동아일보 中 "헐. 털어갈 거 없으니 아끼라는 걸로 들리는데."
"그러다 본격적으로 냄비 하나 두고 같이 먹게 된 시점이 6·25전쟁. 전쟁통에 독상은커녕 먹을 것조차 없었으니까요."
“의식주 문제 중에서도 가장 곤란을 받고 있는 것이 식생활, 1월 3일 서울 철수 후 서울에 잔류하여 있던 시민들은 그간 굶기를 끼니 먹듯 하며…” - ‘서울시민들의 식량난 심각’/ 1951년 07월 04일 서울신문 中
"함께 차려서 함께 먹는 게 한국만의 문화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따로 먹는다고 해서 정이 없다, 전통과 문화를 무시한다고 하는 건 문제라는 거예요."
"문화를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시간이 흐르고 생활 방식이 변하듯이 문화도 그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