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죄송합니다
독자들에게 미리 사과부터 하는 책이 있습니다.
“욕을 얻어먹을 것 같아서 미움 안 받으려고 ‘죄송합니다’ 한 줄 넣었습니다.” - 문학과 죄송사 대표 박준범(40) 씨
출판사 이름도 정중한 사과입니다. ‘문학과죄송사’ 문학과지성사를 모방한 이름입니다.
박준범 씨가 이런 시집을 펴낸 건 2013년부터였습니다.
“막걸리 집에서 3년 동안 알바를 하다가 모은 돈으로 시집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바로 만들기 시작했죠.” 몰래 끄적이던 시(詩) 여러 편을 모았더니 제법 그럴듯한 책이 됐습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50만원을 들인 이 책은 3쇄까지 찍었습니다.
한번 책을 만들어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어졌습니다. 신춘문예 낙선자들에게 말입니다.
내용은 안 봤습니다. 오로지 선착순으로만 작품을 받았습니다. “신춘문예에도 고심해 시를 낸 건데 떨어져 슬프잖아요. 그래서 선착순으로 했어요.”
70편이 넘는 작품이 모였습니다. 이 신춘문예 낙선작들은 오는 4월 어엿한 책으로 나옵니다.
그는 문인으로서 나름 구색도 갖췄습니다. 시집을 낸 뒤에는 다른 시인들처럼 낭독회를 열었습니다. 초대된 사람은 10명에 불과했지만요.
문학상도 만들었습니다. ‘죄송문학상’ 첫 수상자는 바로 자신, 박준범 씨였습니다. 벌써 3번의 시상식을 거친 이 상도 결정 방식은 선착순입니다.
박준범 씨는 책만 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작곡, 노래, 그림, 영화 등 하고 싶은 건 다 하며 사는 예술가입니다.
2014년엔 자작곡으로 그럴듯한 앨범을 냈고, 현재까지 단편영화는 세 편을 냈습니다. 그림도 꾸준히 그립니다.
하지만 성공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제게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이것저것 막 해볼 수 있는 태도가 생겼어요.”
“전 계속할 거예요. 이렇게 하다 보면 여든쯤 됐을 땐 다 잘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의 삶은 좀 뻘짓(?)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고 있는 건 현재가 아닙니다.
“제 서른 살은 스무 살이에요. 학교에서 떨어지고 애인에게 차여도 제겐 ‘끝’은 아니에요.” 20대의 10년을 온통 아버지 병수발로 보낸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꿈꾸는 대로 살아가는 40살 박준범 씨. 그의 나이는 이제 서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