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 배우는 71살 선생님
세젤귀 낄끼빠빠 노페 … “노페가 노팬티야?”
“할머니 그거 아니에요∼ ㅎㅎ” 요즘 아이들이 쓴다는 단어를 훑어보는데 머리가 팽팽 돌았습니다.
손녀보다도 어린 학생들을 만나기 위한 작은 노력이었습니다. 얼마나 긴장되던지요.
안녕하세요∼ 저는 10대에 품었던 꿈을 70이 넘은 이제서야 이루게 된 운 좋은 할머니 김영자입니다!
“선생님∼”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요. 어린 학생들이 저를 이렇게 불러줬을 때요.
“엄마∼” “여보∼” “할머니∼” 거의 50년 동안 이 말만 듣고 살았거든요.
저는 1960년대 대학에서 미술을 배운 꿈 많은 소녀였지만 그 시절 보통 여대생이 그랬듯이 저도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했었죠.
사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보다 기쁜 건 없었어요. 그런데 아들, 딸이 다 커서 집을 떠나니 알 수 없는 허무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난 뭘 하면서 살았지…?’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멘토링” 그러다 지난해 ‘인생나눔교실’이라는 행운을 만났습니다. 지역아동센터와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삶의 경험을 나누게 된 겁니다.
일주일에 80분씩 두 차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본 날에는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행복했어요.
“우리 엄마는 배우는 걸 원래 좋아하셨어요.” 매일 아침 강의 준비하는 저를 보고 우리 딸이 이렇게 엄지를 치켜세우더라고요. ‘인생나눔교실’하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었죠.
남편과 친구들에게도 삶에서 터득한 작은 재능들을 나눠보자 추천하고 다녀요. 아무래도 올해엔 함께할 동료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영자야∼ 너 미술을 해보는 게 어떻겠니?” 요즘은 꿈 많던 여고생 시절 저를 미술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은사님 말씀이 자주 떠오릅니다.
50년이 넘도록 소중히 간직해 온 그분의 가르침을 이제라도 이룬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제 미약한 재능이 아이들에게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입니다. <이 기사는 김영자 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1인칭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