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30일 오후 12시 반, 바빠야 할 응급실이 잠잠하다. 이럴 때 쉴 수 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응급실이 조용한 이유는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폭격에 다친 환자가 없거나, 모두 사망했거나…
이곳은 하루에도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시리아 국경이다.
이곳에 처음 와 받은 안내문을 읽었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여긴 의사도 환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터였다.
여기 람사병원은 요르단에서 시리아 국경에 가장 가까이 있는 병원 중 하나이다. 시리아 병원에서 수용할 수 없는 중상자들은 국경을 넘어 이 병원을 찾아올 수밖에 없다.
등에 총알이 관통하여 하반신 마비가 된 중년 남성, 폭발에 내팽겨져 허리뼈가 탈구돼 하반신이 마비된 중학생 아이도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왔다.
겨우 국경을 넘어온 환자들은 보호자도 없이 홀로 침대에 누워 고통을 참아냈다. 오직 위급한 환자만 국경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호자는 동행할 수 없다.
그래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들의 '보호자' 역할까지 해야 한다.
수술과 회진에 몸도 마음도 지치지만... 두 다리를 잃고도 살아남아 건강한 아이를 낳는 여인을 보며, 아이가 병원에서 부모와 다시 상봉하는 모습을 보며 꺼지지 않는 희망을 느꼈다.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내가 만난 팀원들과 환자를 기억하기 위해,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난 오늘도 이 일기를 적는다.
작년 4월, 2개월 동안 요르단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치료했던 이재헌 의사.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적은 일기를 통해 시리아 난민의 실상을 전국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29일에 한 홈쇼핑 회사가 시리아 난민을 위해 기획한 모금방송에도 출연할 예정입니다.
언제나 인력과 물자가 부족하기에 소액기부만으로도 환자와 의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방송에 출연해 이 안타까운 상황을 널리 알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도움 하나가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 이재헌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