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
레지던트 시절, 저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굳이 보험 처리를 거부했습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감기만 걸려도 동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마음의 병은 수년이나 키운 뒤에나 진료실 문을 두드려 마음 아팠습니다.
“정신과는 미친 사람들만 가는 데라는 편견이 있잖아요.” 저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제 환자들은 ‘누가 볼까 봐’ 절 찾아오지 못합니다.
“아직까지 오지 못하신 분들은 얼마나 많을까?” 고민 상담 봉사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봉사활동 센터에서 ‘상담 봉사’ 자체가 없다고 해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난 2월, 빈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기다리지 말고 제가 그분들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병원을 나오면서 정신 나간 것 아니냐, 혼자서만 착한 척한다는 손가락질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15년 동안 고생한 끝에 얻은 안정된 사회적 지위도, 억대 연봉도 포기해야 했지만 저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고민하지 않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저는 사비로 중고 탑차 하나를 사서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를 차렸습니다. 내부도 직접 아늑하게 꾸몄습니다.
학교, 마트, 도서관, 주민센터... 9개월째 매일 이 차를 타고 다니며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거리를 누비고 있습니다.
한 분도 만나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곳도 생기고, 절 기다리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남들에게 피해 안 가게 죽고 싶다’ 는 노인 분께, ‘인생이 허무하다’는 주부에게, 크고 작은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저와의 만남이 전환점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계속 환자를 찾아다닐 겁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누군가에게 털어놔 보세요. 행복 키우미가 달려가겠습니다. <이 기사는 임재영 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1인칭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