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 아버지는 평생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았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교복을 입은 저를 본 아버지가 다짜고짜 바지를 벗으라 하시더니 그걸 다 가위로 잘라 버리시는 거예요.
“머리가 왜 이렇게 길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연예 프로그램은 못 써! 보지 마.” “빨리 들어와.” 아버지는 정말 엄하셨어요. 제가 말할 틈도 주지 않으셨죠.
전 그날 이후 아버지와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무려 12년이란 세월이 흘렀죠.
“아들아 잘 지내냐?” 그러던 지난해 3월, 군 복무 중이던 저에게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어요. 웬일일까 싶었죠.
“내가 이제 회사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가고 싶은데 아들이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제게 세계 일주를 제안하셨어요. 전 고민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사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친한 동생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듣게 됐어요. 갑자기 마음이 싱숭생숭해졌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가고 싶다는데... 함께 갈까?’
그렇게 저는 7월 전역을 하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세계 일주를 떠났어요.
그리고 머나먼 터키 땅에서 아버지가 왜 이 여행을 시작했는지 알게 됐어요.
“아버지는 평생 다른 사람 눈치만 보고 살았어. 그게 너무 후회돼. 이 여행이 나의 첫 용기였다. 아들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좋아하는 걸 즐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어요. 처음으로 아버지가 속마음을 털어놓으신 거였거든요.
생각해보니 제가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었던 이유가 아버지가 눈치 보며 사회생활하셨기 때문이잖아요.
전 그걸 12년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던 거죠. 200일간의 세계 일주가 선물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죠. 눈치 보며 살아오신 아버지한테 너무 고마웠어요.
세계 일주를 마친 뒤 아버지는 정말 남의 눈치를 안 보고 살기 시작하셨어요. 요즘은 기타, 춤, 운동까지 하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게 지내시죠.
그리고 저는 올해 4월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고단했던 아버지의 삶을 조금씩 더 이해해가고 있고요. “가족들 위해서 되게 열심히 사회생활하셨구나. 야근하고 집에 들어오셔서 얼마나 피곤하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연세에 눈치 보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제야 좀 이해가 갑니다.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