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드라이버 차와 이별하던 날
‘정말 그만둬야 하는 걸까. 난 아직 건강한데.’ 아쉬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습니다.
“에고…” 며칠 밤을 끙끙 앓기도 했습니다. 포기하기 싫었거든요.
저는 신세대 아빠, 멋진 할아버지로 살았습니다. 모든 게 운전 덕분입니다.
“아버지! 위험하니 안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가족들은 걱정했죠.
“아버지, 우리 다음 주엔 어디 가요?” 일주일 만에 걱정은 즐거움으로 변했습니다. 가족들을 태우고 집 근처 유원지, 소양댐, 맛집을 마음껏 쏘다녔거든요.
할애비 노릇도 차 덕분에 얼마나 멋지게 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노부부 집에 살았던 첫 손자 영광이를 유치원에 매일 데려다준 것도 바로 이 찹니다.
유치원에 다녀오는 길이면 영광이는 우리 부부와 함께 목청껏 노래를 불렀어요.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건강히 다녀오겠습니다!”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우리 손자 녀석은 입대하기 전 우리 부부를 찾아와 대문 앞에 서서 자동차와 인증샷까지 찍었습니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 울적했던 마음도 운전을 하며 달랬습니다.
“한번 모여야지∼” 이 말만을 반복하던 60년 지기 고등학교 친구 부부를 태우고 전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최근엔 주말 텃밭을 차로 오가며 아내 사랑을 듬뿍 받았죠.
그런데 차도 저처럼 나이를 먹는지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더군요. 저도 눈이 자주 피로해지고 순발력도 떨어져 운전이 위험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는 운전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고집부려선 안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두 달 전 마지막으로 창문을 활짝 열고 국도를 달렸습니다. 그리고 18년간 정들었던 차와 이별했습니다.
이제는 버스를 탑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창밖을 바라보며 자연을 느끼고 묵묵히 삶을 반추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가끔 운전대를 잡는 꿈을 꿉니다. 제 옆에는 아내가, 뒤에는 손자들이 앉아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웃음소리는 귀를 간지럽힙니다.
내 나이 올해 82세 운전을 하며 참 행복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저는 신세대 아빠, 멋진 할아버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는 김기태 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1인칭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