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8일 동안 약국문 못 닫는 약사
안녕하세요. 부천에서 22년 동안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김유곤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약국은 일요일만 빼고 매일 24시간 열려 있어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심야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지난 2010년에 정부가 심야약국을 모집했는데 부천에는 지원자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막상 야간에 문을 열었더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6개월 동안 시범 운영기간이 끝나고 그만해도 됐는데...
찾아오는 분들 때문에 밤에 약국 문을 닫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6년이나 하게 됐네요. ㅎㅎ
주로 밤에 오시는 분들은 참고 참다가 급하게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멀리 일산, 안산, 시흥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밤이 되면 약국에는 유독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축 늘어진 어깨의 회사원이 밤늦게 고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던 길에 약국 문을 두드려요.
한 평생을 쉼 없이 달려왔지만, 남은 건 깊게 파인 주름과 불편한 몸만 남은 할머니도 잠 못 이루시고 약국을 찾으시죠. 술 한 잔에 시름을 삼킨 아버지들도 비틀비틀 약국 벨을 누르세요.
그럼 약과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드려요. 그들의 말동무가 돼 드리기도 하고요.
그럼 약사로서 아픈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는 생각에 제 마음도 충만해져요. 그래서 오히려 손님들에게 고맙죠.
한 번은 캐릭터 비타민을 달라며 잠 못 자는 아이 때문에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캐릭터 비타민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은 모든 피로를 씻어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약국을 벗어나지 못해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약국에서 다 해결해요. 잠도 쪽잠을 자요.
그래도 하나도 힘들지는 않아요. 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는 약국에서 놀고 있어요. ㅎㅎㅎ
저는 뭐든지 논다고 생각해요. 일이라고 생각하면 하기 싫지만 논다고 하면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약국 찾아주시는 분들 모두 제 표정이 밝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저도 영양제, 비타민도 챙겨 먹고 매일 한 시간 운동도 합니다. 제 건강도 잘 챙겨야 약국에서 더 재밌게 놀 수 있잖아요.
그리고 시골 동네에서 만드는 매실차와 유자차를 약국에서 팔기도 해요. 그 수익금으로 그 마을 친구들 장학금을 마련해요. 생활 속에서 작게나마 나눔을 실천할 수 있으니 그것도 얼마나 좋아요.
솔직히 심야약국을 운영하면 오히려 적자예요. 몸 관리도 더 많이 해야 하고요. 그런데도 왜 하냐고요?
누군가는 늦은 밤 저를 찾기 때문입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약국이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약국이기 때문에 저는 항상 약국에서 문을 열어놓고 손님들을 기다릴 거예요.
꼭 약이 필요 없더라도, 혹시 지나가다 바른손약국이 보이시면 잠시 차 한잔하러 들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