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유난히 무덥던 지난 여름부터 어느 학교 교정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학위장사’를 반대한 학생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투입된 1,600여 명의 경찰력.
“주된 주동자들에 대해 신속하게 사법절차를 진행하겠다.” -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 몸과 마음을 다친 학생들을 위해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본관’에 모여들었습니다.
“우리가 너희의 배후세력이다.” - 1차 총시위(8.3) 졸업생 선언 中 본관에서 일어났던 일은 ‘시위’라기엔 조금 낯선, 단순히 ‘모임’이라기엔 분명한, 그러니까 그건, 새로운 형태의 ‘문화’였습니다.
‘구호’ 대신 ‘질서’가 자리잡았습니다. 청소팀은 80일 넘게 이어진 본관 점거 기간 동안 본관을 먼지 하나 없게끔 끊임없이 정리했습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팀을 꾸려 점거중인 본관을 ‘활용’했습니다. 점거 기간에도 본관은 ‘활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각 분야에 재직중인 선배들은 본관을 찾아 후배들에게 자소서 첨삭, 진로상담을 해주기도 했으며,
메이크업, 직구 강좌, 족보 나눔, 보물찾기, 물품 공동구매 등 각종 이벤트와 재능기부가 본관에서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야식까지. 졸업생들과 일부 재학생들은 따로 익명의 ‘단톡방’을 만들어 매일 도시락과 야식을 보내줬습니다.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는, 조금은 느리지만 모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온 · 오프라인 회의 방식을 거쳤습니다.
그곳엔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벗들’만 있었습니다. 본관을 점령한 시위는 더운 여름부터 시작돼 어느덧 쌀쌀한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외롭고 힘든 싸움을 꿋꿋하게 견뎌온 학생들이 이화정신을 머금은 들꽃으로 피어났다면… 이제 우리 교수들은 들꽃은 살려내고, 폭군을 몰아내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시위(10.19) 성명서 낭독 中
학생들은 학교 설립 이래 첫 200여 명의 교수 시위라는 이례적인 사건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이어질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너와 나는 참 애틋했다. 난 감히 그것을 사랑이라 이르겠다. … 너와 나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벗이 되었고 우리가 되었다.” - 3차 총시위(10.7) 백일장 中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지난 19일 총장직을 사퇴했습니다. 지난 85일 동안 학생들은 새로운 ‘문화’를 보여줬습니다.
학생들은 학내 의사결정 민주화, 정유라 씨의 특혜 의혹 등 남은 과제에 대한 답을 기대하며 이제 본관에서 나올 겁니다. 이 학생들이 다시 본관으로 모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