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도토리묵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저 좀 도와주세요! 제 친구들이 다 죽어 나가요. 어저께는 제 친구 멧돼지가 숨을 헐떡이다 죽었어요.
지지난 주에는 꽃 사슴 친구가 목이 꺾인 채 하늘나라로 가버렸고요. 사실 조금 더 지나 추워지면 제 가족들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왜냐고요? 바로 이맘때만 되면 나타나는 ‘도토리 털이범’ 때문이죠.
그 사람들은 풀숲을 다 밟아 놓는 건 기본이고 나뭇가지를 꺾어서까지 도토리를 가져가요. 도토리 좀 없다고 동물들이 설마 죽기야 하겠냐고요?
도토리가 주식인 저희만 피해 보는 게 아니에요. 최근 한 멧돼지는 도토리가 없어 먹이 찾으러 마을로 내려갔다 붙잡혀 죽었어요. 꽃사슴은 도토리 줍는 사람 보고 놀라 도망치다 장애물에 부딪쳐 죽은 일도 있었죠 ㅠㅠ
공원에서 도토리 줍는 건 엄연한 불법이에요. 하지만 대부분 불법인줄 몰랐대요. 그래서인지 엄격하게 처벌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요.
그런데 저희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어린이대공원에 설치된 '열매 저금통'이라는 건데요,
공원 앞에 통을 두고 나가는 사람들이 주운 열매를 넣고 갈 수 있도록 저금통을 비치한 거예요. 이렇게 모인 열매들을 다시 풀숲에 뿌려 저희에게 돌려준다는 거죠.
“그동안 열매 채취 금지에 대한 현수막을 걸거나 저희가 직접 불법이라고 설명해 드렸지만 서로 얼굴을 붉힐 뿐 개선되지는 않았습니다.” 저금통 하나 만든 것 뿐인데 효과는 놀라웠어요.
“열매 저금통을 설치하고 나서는 시민들께서 무심코 주운 도토리를 놓고 가시고요. 자연스레 '열매를 줍지 말자'는 생각도 하게 하는 것 같아요. - 어린이대공원 시설팀 정형석 주임
이 저금통 덕분에 예전보다 사람들이 열매를 주워가는 일이 줄었어요. 이번 겨울에는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귀여운 저희를 계속 보고 싶다고요? 그러면 저희의 겨울 식량을 싹쓸이해가지 말아 주세요. 열매를 아무도 주워 가지 않아 열매 저금통이 필요 없게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