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치매에 걸린 영감에게

#2. 몸이 아파서 초등학교를 11살이 다 돼서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6.25 겪고 1년 후였죠. 근데 애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창피해서 다니기 싫더라고요.

#3. 뭐... 학교를 안 다녀도 오빠, 언니가 많이 가르쳐줬어요. 방학 때면 교육봉사 오는 대학생들이 여는 야학도 다녔고요. 뭐 충분하진 않았지만요.

#4. 영감을 처음 만난 건 16살 때였어요. 큰 오빠 친구여서 자주 집에 왔었거든요. 글을 모르는 나에게‘사랑’이란 책을 읽어줬어요.

그때는 그게 연애라는 걸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큰 오빠에게 나를 반려자로 맞고 싶다고 했다더라고요.

. 하지만 저희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영감이 지금은 그래도 대학까지 나왔거든요. 그에 비해 내가 너무 많이 모자랐죠. 나이 차이도 많이 났고요.

#7. 그래서 영감 33살, 저는 25살 되던 봄에 결혼했어요. 아들도 하나 낳았고.... 다들 그랬지만, 먹고살기 바빴죠 뭐 나중에 늙어서 둘이 여행도 다니자고 했는데...

#8. 그 약속을 지키지도 못했는데 남편에게 그런 몹쓸 병이 올 줄 몰랐어요...

#9. 증상이 있었을 때 늙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먹기 싫다 해도 강제로라도 약을 먹일걸... 그럼 지금보다는 나았을 텐데... 그게 제일 후회돼요.

#10. 사실 내가 까막눈이에요. 글을 배우고 영감이 어릴 때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내가 쓴 글을 읽어줬어요. 그랬더니 고개만 푹 숙이고... 싫은 게 아니라 인지 자체를 못한다네요..

#11. 에으.. 너무 묻지 말아요. 아직도 영감 얘기만 하면 난 마음이 너무 아파요.

#10. 사실 내가 까막눈이에요. 글을 배우고 영감이 어릴 때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내가 쓴 글을 읽어줬어요. 그랬더니 고개만 푹 숙이고... 싫은 게 아니라 인지 자체를 못한다네요..

#13. 글을 몰랐을 때는 안경을 안 가져왔다고 하고

#14.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리모컨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용기가 없었기에.

#15. 지금은 5년째 치매로 누워있는 영감에게 편지도 써서 읽어 주기도 한다.

나에게 한글 가르쳐 주던 영감이 지금 공부하는 것을 보면 칭찬해 줄 텐데.

#16. 아직 받침을 다 알지 못하지만 더 노력해서 시도 쓰고 편지도 쓰고 중학교 과정도 도전하고 싶다.

#17. 내가 중학교 졸업장 받으면 영감이 벌떡 일어나 안아 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