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건 선물일까? 쓰레기일까?
우리 아버지는 강남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님이세요. 일하신 지는 4년이 좀 넘었어요.
관리소장이라는 직책이지만 주택에 하자가 있으면 고치러도 가세요. 아무래도 주민들한테 잘못 보이면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죠.
며칠 전에 집에 들어갔는데 거실에 치약이 가득하더라고요. 무슨 치약이 이렇게 많냐고 아버지께 여쭤봤어요.
관리소장이신 아버지는 그날 전등이 나갔다는 민원을 받고 올라가 전등을 교환하셨대요. 민원 처리를 마치고 나오려는 그 찰나.
“따로 챙겨드릴 건 없고 집에 치약이 많은데 좀 드릴게요.” - 아파트 주민 주민분께서 집에 치약이 많다고 치약을 챙겨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거의 20개쯤 받아오신 것 같아요.
“관리소에 치약 20개 정도 더 있으니까 오늘 나머지 치약도 다 가져올게.” 그리고 28일 아침, 아버지가 관리소에 남은 치약들을 더 가지고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뉴스를 보며 가족 모두 아침 식사를 하던 중이었죠.
그런데 그때, 뉴스에 ‘가습기 살균제 치약’이 나오더라고요. 그 순간 집에 정적이 흘렀어요. 어제 아버지가 받아오신 치약들이 바로 뉴스에 나오는 그 치약들이었거든요.
받은 치약들을 확인해보니 제조일자가 2008년인 것도 있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받으셨을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휴... 왜 그럴까 사람들이...” 하지만 아버지는 이런 일은 별일 아니라는 듯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않으셨어요. 그리고는 딱 한 마디 하셨죠.
사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에요. 평소에도 주민들이 물건이나 음식들을 나누어주세요. 물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들이긴 하지만요.
“어차피 내려가는 길이니까 쓰레기봉투 좀 버려주고 가세요.” 저번에는 새벽에 민원이 들어와 주무시다가 급히 택시를 타고 아파트로 가셨어요. 그리고 주민의 민원을 처리한 뒤에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셔야 했죠.
아버지는 주민들에게 화를 낼 수도, 항의를 할 수도 없는 '을'이니까 늘 참는 데 익숙하세요. 참느냐 못 참느냐에 우리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으니까요.
우리 가족이 바라는 건 아버지가 무시당하지 않는 것. 단 하나예요.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일 거라고 생각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기사는 한 관리소장의 아들과 인터뷰를 토대로 구성한 1인칭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