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석락 공군 참모총장의 지시로 조종사들이 기계획된 비행 임무를 취소한 채 군악대 병사들의 반주 속에 음주가무 회식을 즐긴 사실이 SBS 보도로 드러났습니다. 취재 중에 들었던 제일 큰 걱정이 "공군에서 제보자를 색출하려 들면 어떡하나"였습니다. 걱정이 현실이 될 조짐이 보입니다.
공군 일부 조직에서 조용히 "SBS 보도 내용, 음주가무 현장 영상과 사진 등을 분석해 제보자를 추정하고 있다"는 소식이 기자에게 접수됐습니다. 색출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색출의 방법을 널리 알리는 꼴이 될까봐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색출 자제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부 예비역 공군 장군들이 "문제될 것 없다", "조종사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하는 악의적 비난이고, 옛날에는 조종사 더 챙겼다", "잘 버텨라"라며 공군 현역 장군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이들도 자제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태의 본질을 보기 바랍니다.
병사들 불러서 노래·반주 시키고 비행 취소한 채 음주

저녁에 술 마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시느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공군에 병과가 참 많지만 참모총장이 그중 전투기 조종사들만 따로 불러서 군악대 병사, 헬기 조종사·정비사 수고 끼치며 부대 안에서 음주가무를 벌였습니다. 문제의 소지가 큽니다.
음주가무 간담회 현장 상황을 들춰보면 낯 뜨거운 장면들이 많습니다. 군악대 병사들은 오후 1~2시쯤 간담회가 열리는 비행단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군악대 소속 부대에서 점심 일찍 먹고 버스로 행사가 열리는 비행단에 간 것입니다. 모 비행단 소속 장교는 "군악대 병사들이 무료하게 기다리다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만찬 장소에서 공연 준비를 했다", "조종사들은 고기 구워 먹고 술 마시며 노는데 배고픔 참으면서 웃음 띤 채 기타 치고 노래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말했습니다.
몇몇 조종사들은 행사의 초점이 "참모총장을 얼마나 기쁘게 해드리느냐"에 맞춰졌다고 지적합니다. 한 조종사는 "어느 비행단의 행사가 밋밋했다면 공군 내부에서 '재미 없더라'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행사를 준비하는 비행단의 목표는 '참모총장 기분이 좋으셨다'라는 칭찬을 듣는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다른 조종사는 "행사 중에 참모총장은 자전적 이야기를 했고, 질문도 많이 했다", "답변을 한 조종사에게는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를 줬다"고 전했습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는 와중에 손 참모총장은 "내일 비행 안 해도 괜찮지"라는 식으로 음주 후 비행 취소를 부추겼습니다. 어떤 조종사들은 손 참모총장의 말에 환호했다지만 속으로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걱정하는 조종사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행사 전반을 지켜본 한 조종사는 "재미있는 행사로 준비하느라 힘이 많이 들었다", "겉으로 웃으면서 술 마신 조종사들의 마음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무엇보다 조종사들의 비행 개시·종료를 지시할 권한이 없는 참모총장이 술 먹자고 비행 취소 지시한 것에 충격을 받은 조종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상대적 박탈감도 사치"
행사를 뛴 조종사들 불만도 있지만 다른 병과 장병들의 속마음만 하겠습니까. 타 병과 장병들은 참모총장이 주관하는 파티에서 고기 굽는 냄새, 흥겨운 노래 소리 새어나오는 것을 멀찍이서 맡고, 들으면 부아가 치밀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행사 지원으로 하루를 꼬박 보낸 헬기 조종사와 정비사들은 참 섭섭한 모양입니다.
손석락 참모총장이 주관한 조종사 간담회는 4월 8일(기상으로 비행 취소), 4월 16일(총장 지시로 비행 취소), 4월 21일(총장 지시로 비행 취소), 4월 29일(총장 지시로 비행 취소), 5월 7일(비행 일부 조정), 5월 11일(비행 정상 시행) 등 6차례입니다. 이 가운데 4월 8, 16, 21일 행사 때 손 참모총장은 헬기로 계룡대와 해당 비행단을 왕복했습니다. 헬기 비행 임무를 끝낸 조종사, 정비사들은 밤 12가 돼야 임무 해제됐다는 전언입니다.
한 예비역 공군 헬기 조종사는 "참모총장 지휘 헬기는 과거 몇 십 년 동안 전투기 조종사 술 파티 지원으로 늦게 복귀한 적 많았다", "현역 헬기 조종사들은 지금 사태를 새삼스럽게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 헬기 조종사는 "지휘 헬기는 참모총장의 택시나 마찬가지이고 헬기 조종사는 진급도 잘 안됐기 때문에 지금 와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도 않는다"고 토로했습니다.
공군 지휘부는 이번 사태를 냉정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조종사를 따로 갈라치기해서 사기를 진작시키려고 했지만 젊은 조종사들은 갈라치기 우대를 반기는 눈치도 아닙니다. 공군 항공기 사고가 워낙 집중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조종사들만 챙기는 모습이 조종사들에게 불편하게 비친 것으로 보입니다. 소외된 타 병과 장병들은 그저 속이 쓰릴 뿐입니다. 공군 지휘부가 상황 파악 냉정하게 한 다음, 공군 전체의 화합을 위한 상식적인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장병들 마음을 잘 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