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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 화물차 기사가 면허취소 수준의 혈중 알코올 농도로 1·2심에서 모두 '음주운전'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요. 이 판결, 대법원에서 뒤집혔다고 합니다. 단, 물 1잔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비디오머그, 장훈경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김 씨, 2019년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검찰은 음주운전 재범 혐의를 적용했고, 김 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대법원에서 의외의 판결이 나옵니다.
김 씨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갑자기 판결이 뒤집힌 이유가 뭐였을까?
경찰이 음주 측정 전 김 씨에게 입을 헹굴 물을 제공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 2017년 경찰청은 교통단속 처리지침을 개정하면서 음주 측정 전 운전자에게 입을 헹굴 물 200ml를 제공하도록 했습니다.
2023년 7월부터는 이 절차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도 명시돼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음주 측정 당시에는 이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 씨는 경찰이 입을 헹굴 물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측정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실제보다 높게 측정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과 2심에서는 김 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죄가 선고됐지만, 김 씨의 주장, 대법원에서는 판결을 뒤집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잠든 김 씨에게 물을 주려고 다가갔다가 그냥 돌아섰는데, 이후 김 씨가 갑자기 측정에 응했지만 입을 헹굴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김 씨가 잠들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법에서 정한 절차를 생략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물 제공 절차를 따르지 않은 음주 측정 결과는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반된 판결에서 쟁점이 된 건 김 씨의 입에 남아 있던 잔류 알코올이었습니다.
1심에서는 김 씨가 술을 마신 뒤 20분 넘게 지나 측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입 안에 남은 알코올이 측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낮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실제 음주 단속 현장에서는 딸꾹질, 트림 등의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20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음주 측정 수치가 실제보다 높게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이 김 씨의 실제 음주 수치가 더 낮았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고 실제 측정 결과가 정확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에 정해진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때 그 결과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입안에 남아 있는 알코올은 실제로 음주 측정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1978년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를 보면, 실제로 술을 마시지 않고 알코올음료를 입에만 접촉시킨 뒤 호흡 측정을 했을 때, 입안에 남은 알코올의 영향이 사라지기까지 10~19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따뜻한 물로 입을 헹구자 그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입안에 남은 알코올이 측정값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물로 입을 헹구면 그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국내 음주운전 재판에서도 측정 절차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특히 측정 수치가 처벌 기준에 가까울수록 소량의 잔류 알코올도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앞으로는 바디캠이나 블랙박스 등 단속 당시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121명.
음주운전은 타인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범죄인만큼 음주운전을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정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그 처벌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물 1잔이 가른 이번 판결.
음주운전에 대한 엄중한 처벌만큼이나 그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