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영유아검진을 총 8회 실시합니다. 생후 14일부터 71개월까지 진행되고, 회차별로 주요하게 보는 항목도 차이가 있습니다. 생후 6개월까지인 1, 2차 검사는 신체적 발달을 중심으로 보고 생후 9개월 이후의 3차 검사부터는 한국영유아발달선별검사(K-DST) 등이 추가되며 대근육, 소근육, 언어, 인지, 사회성 등의 발달 전반의 영역을 평가합니다. K-DST 결과는 ▲빠른 수준 ▲또래 수준 ▲추적검사 요망 ▲심화평가 권고 등 4단계로 나옵니다. 종합 결과는 이를 반영해 ▲양호 ▲주의 ▲정밀평가필요(심화평가 권고 경우) ▲지속관리필요(이미 발달장애 등 확진을 받아 병원 진료를 받고 있는 상태)로 나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검률은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단 1회도 영유아 검진을 하지 않은 '미수검률'이 1.3%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이 연구의 결과입니다.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렸던 '발달장애 발달지연 아동 조기개입 국가 지원 강화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이런 '높은 수검률'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이 심포지엄에 참여했던 의료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우리나라 영유아 검진은 매우 보편적 선별체계를 갖추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마디로 영유아 검진 체계는 해외 다른 검진과 비교해도 잘 갖춰져 있고 발달지연 등의 아이들도 잘 선별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영유아검진 미수검률 1.3%의 진짜 비결
이 심포지엄에 참석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자녀의 영유아검진을 위해 서울의 한 소아과 건물 앞에 텐트와 돗자리를 펴고 밤새 대기를 하던 부모님들의 모습입니다. 영유아검진을 꼼꼼히 봐주는 것으로 입소문이 난 이 소아과는 전화나 온라인 예약을 받지 않아 정해진 날 방문 예약 접수만 가능합니다. 사실 예전부터 굉장히 유명했던 곳인데 지난 여름 한 방송에서 '무더위 속에도 줄을 선다'며 집중 조명한 뉴스가 화제가 됐습니다.
저는 이 부모님들의 마음을 정말 공감합니다. 같은 소아과는 아니지만 저도 밤새 줄을 선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이가 발달장애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불안해하던 시기, 주변인의 추천으로 영유아검진을 40분 이상 꼼꼼히 봐준다는 수도권의 한 소아과를 알게 됐고 영하의 날씨였던 한 겨울 남편과 돌아가며 밤을 새 대기표를 따냈습니다. 월요일 아침 9시부터 한달 예약을 받고, 하루에 2명만 검진이 가능하다 보니 당시 커트라인이 30명이었습니다. 건물 계단 몇 층을 빙빙 돌며 끝이 보이지 않을 대기 줄이 있었는데, 제가 28번째였습니다.

영유아검진을 뭘 그렇게 유난을 떨며 하느냐는 비난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소아과에서 진행되는 영유아검진은 굉장히 간략하게 끝납니다. 저도 아이의 발달장애를 감히 예상도 하지 못했던 때에는 일반 소아과 영유아검진을 갔었습니다. 특히 집과 가까운 동네 소아과는 현실적으로 30분, 40분씩 검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략 신체 계측을 하고 부모 문진을 통한 간단한 상담을 한 후 마무리가 됩니다.
아이의 성장에 큰 문제나 고민이 없다면 개의치 않을 수 있지만, 아이가 발달지연이나 장애가 의심되는 상황에 있다면 이런 식의 영유아검진은 부모의 고민을 채워주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무더위에 또는 혹한 속에도 소문난 소아과 앞에 검진 대기표를 끊기 위해 줄을 서는 부모님들 대부분은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남다른 고민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수검률 1.3%라는, '보편적이고 훌륭한 선별체계'라고 평가되는 이 수치는 어디서든 영유아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갖춰진 체계의 장점도 있겠지만 절반 이상은 간절한 부모들의 노력과 정성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유아검진 결과가 '결과'에만 그치는 대한민국 현실
문제는 영유아 발달 문제를 찾아낼 수 있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선별체계"를 갖추어 놓았을 뿐 그 다음이 없다는 겁니다. 아이가 발달지연이 의심되니 전문의의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미의 '심화평가 권고'를 받으면 보건복지부는 발달정밀검사비를 지원합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금액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해당 차수의 영유아 검진을 받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검사를 받아야 하고, 돈은 검사를 시행한 다음 해의 상반기까지 청구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검사를 여러 번 한다고 다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국가가 해주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어느 병원에 가서, 어느 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재활의학과를 가야 하는지 소아과를 가야 하는지 소아정신과를 가야 하는지, 그때부터 부모의 '기획노동'이 시작됩니다. 정부의 발달정밀검사비 지원이라도 받으려면 1년 이내에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분야의 저명한 전문의'라고 알려진 사람들은 대기가 짧아야 1년, 길면 5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영유아검진 결과서에는 굉장히 간단한 내용과 함께 '심화평가 권고'라고만 적혀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런 소견을 냈는지 검진을 한 의사의 의견서 같은 건 첨부되지 않습니다. 병원은 부모가 직접 들고 간 영유아검진 결과서만 볼 뿐입니다.(사실 이마저도 잘 보진 않습니다. 다만 영유아검진 결과서가 있으면 1, 2차 병의원에서 발급한 진료의뢰서 등이 없어도 3차 병원(상급종합병원) 진료가 가능합니다.) 모든 발달검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병원만 그럴까요. 현행 장애아동복지지원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는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도록 돼있습니다. 올해부터 지역발달장애지원센터와 장애아동지원센터가 통합 운영되게 됐습니다. 지역발달장애지원센터는 지적, 자폐 등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서비스를 하는 곳이고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는 만 18세 미만 모든 종류의 장애 및 장애가 예견되는 발달지연, 영유아 위험군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장애인과 가정을 대상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비스를 연계하는 기관입니다. 모두가 나라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곳이지만 이런 센터에 가서도 구구절절 왜 이 곳에 오게 됐는지, 아이의 상태는 어떠한 것인지 부모가 설명을 해야합니다. 의료적인 소견을 일반인인 부모가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가 실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교육청도 비슷합니다. 장애 및 발달지연 아동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운영되는 특수교육대상자 제도를 담당하는 곳은 교육청 산하 지역 특수교육지원센터입니다. 만 5세부터 특수교육 대상자에 지원할 수 있는데 교육청은 아이가 발달지연 또는 장애로 진단을 받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데이터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또 온갖 서류를 다 떼어서 제출해야 하고 아이가 왜 특수교육 대상자가 돼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합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본의 '연계' 시스템
지난 9월 뉴스토리 <대한민국 '자폐 사교육' 실태…치료가 사교육이 된 나라> 방송을 준비하며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은 영유아검진이 법정의무검진입니다. 쉽게 말하면 '안 하면 안 되는 검진'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횟수가 적습니다. 현재는 1세 6개월, 3세 등 2회만 의무이고 현재 5세도 의무화 하는 방안이 추진 중입니다.

우리나라는 검진을 주로 소아과에서 하지만 일본은 지역(시정촌) 보건센터에서 하거나, 지역 보건센터가 위탁한 소아과에서 진행합니다.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우리나라의 검진은 의사 한 명이 아동과 부모의 문진 내용을 보고 판단을 내리지만, 일본은 다학제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조산사, 심리상담사, 보건사 등 여러 전문가가 합동으로 평가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달 과정에 의심되는 상황이 발견되면 보건사(사회복지사와 간호사가 합쳐진 개념)가 중심이 되어 발달지원센터 및 지자체 복지망으로 직접 연계합니다. 공공 조기개입, 일본에서는 '료이쿠(療育)' 시스템이라고 불리는데 이 시스템이 가동되며 검진부터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조기개입 복지 서비스가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지자체별로 제도 품질의 차이가 발생하는 단점은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부모가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같은 이야기를 무한 반복하진 않아도 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발달장애 조기개입을 위한 국가보장시스템의 시작은 '연계'
발달장애 영유아에 대한 조기개입은 아이의 성장 궤적을 달리할 수 있는 중요한 것임에도 사실상 진단 후 국가 시스템은 부재한 상황입니다. 대부분 사설 센터에 의존하고 있는 조기개입은 결국 부모의 시간, 정보력, 경제력이 좌우하고 있습니다. 갖춰진 것보다 보완해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은 게 현실이지만 그 시작은 정보의 연계입니다. 대한민국 전자 정부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앞서 언급한 대로 발달지연 및 장애 아동에 대한 정보는 각 단위별로 산재돼있습니다. 이 정보들이 '연계'만 되어도, 부모들이 정보를 찾아 떠돌고 아이가 지원이 필요한 이유를 기관마다 찾아다니며 설명하는 수고를 크게 덜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종료된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런 문제가 적극적으로 다뤄지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주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와 교육위원회에선 거의 언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폐 사교육 실태' 보도를 보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준 의원실도 몇몇 있었지만 실제 질의로 연결이 되진 않았습니다. 국정감사 거의 막바지에 이뤄졌던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이 한국장애인개발원장을 상대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영유아건강검진 결과를 지역아동지원센터로 연계하는 대안이 필요하다'며 "검진 전에 보호자 동의를 받아 공단이 검진 결과 정보를 지역 센터에 제공하고, 지역아동지원센터가 선제적으로 (조기개입) 지원을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게 사실상 전부였습니다.

예상 외의 법안은 복지위, 교육위가 아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국회 행안위 소속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지난 28일 장애가 있거나 장애 소견이 있는 아동이 의료기관에서 진단을 받은 이후 필요한 특수교육과 재활서비스를 적기에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대표발의했습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보건소와 병·의원에서 장애 또는 장애 관련 진단을 받은 영유아의 보호자에게 특수교육 관련 정보와 상담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고, 함께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가와 지자체가 의사에게 장애아동의 특수교육, 재활 등 관련 지원 서비스와 제공 기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료인이 장애 또는 장애 관련 소견을 받은 아동과 그 보호자에게 해당 정보를 안내하도록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자체, 교육, 의료 영역에서의 정보 제공과 안내가 '연계'되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이 두 가지 법안의 가장 큰 의미라고 보여집니다. 실제 입법이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관련 법안의 내용에 '연계'라는 단어가 담겼다는 것이 개인적으론 인상 깊었습니다. 최보윤 의원이 국감 현장에서 질의한 건강보험공단이 지역 아동센터에 검진 결과를 제공하는 일도 법적 근거 보완을 통해 현실화 된다면 보다 적극적인 '연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자폐 사교육'과 '특수학교' 문제 취재를 하며 만났던 지체장애 아동 어머님이 있습니다. 이 어머님과 나눴던 여러 이야기 중 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웃픈' 현실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었습니다.
"아이 장애 등록을 한 지 6년이 됐는데, 그동안 (장애 담당) 주민센터 직원이 7번 바뀌었어요. 이제는 담당 직원이 바뀌면 제가 가서 설명을 해주고, 모르는 거 물어보시면 알려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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