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지난 4월, 한 코스닥 상장사의 임시 주주총회장.
출입을 제지하는 한 남성에게 회사 대표가 강하게 항의합니다.
[전순옥/SI리소스 대표 : 권한을 먼저 입증을 해주세요. 권한이 있어요? 보여주세요!]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이 남성은 기업 경영권 소송으로 유명한 전 모 변호사입니다.
[SI리소스 측 : 주주명부가 어딨어?]
[전 모 변호사 : 저희가 갖고 있다니까 왜 그러세요.]
대치 끝에 이날 주총은 무산됐지만 나흘 뒤 열린 주총에서, 경영권은 결국 전 변호사 측으로 넘어갔습니다.
[전순옥/SI리소스 대표 : 정족수가 필요한데 그거를 다 무시하고 그냥 두드리기 시작한 거예요. '가결이 되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일인가?]
회사 측이 법원에 주총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사이 전 변호사 등은 회사를 점거했습니다.
대표가 항의하자 전 변호사가 휴대전화를 낚아채 실랑이가 벌어지고, 뒤늦게 CCTV를 발견하곤 화면을 가리기도 합니다.
이후 법원이 "주총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제동을 걸었지만, 그 사이 회사가 받아야 할 거래처 대금 41억 원 중 30억 원은 채권으로, 11억 원은 현금으로 전 변호사 측이 가져가 현재 반환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전순옥/SI리소스 대표 : 거래 대금을 받아서 로펌 통장으로 바로 이체를 시킨 거예요. 제가 책임져야 될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직원들도 있고, 파트 너사들이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너무, 너무나 괴로운 일.]
경영권을 가까스로 되찾은 회사 측에 돌아온 건 또 다른 압박이었습니다.
"대표를 횡령 배임으로 고소할 테니 합의할 거면 답을 주고, 아니면 고소 후 공시를 내겠다"는 요구가 이어졌고, 응하지 않자 거래소에 피소 사실 공시 신청만 무려 67차례나 집요하게 접수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경영권 분쟁을 겪던 또 다른 기업 A 사에도 돈 요구가 전달됐습니다.
임금체불 건으로 재판받고 있는 전 변호사가 구속을 피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전 변호사 측 최 모 씨 : 우리 변호사님이 가서 이야기 좀 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하고 이제 온 겁니다. (변호사님이) 7월 말까지 돈이 좀 많이 필요하시더라고요. 그때 왜냐하면 예전에 무슨 임금 체불이 있어 가지고.]
A 사의 분쟁 상대였던 B 사 역시 같은 요구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전 변호사를 만나 입장을 물었습니다.
[변호사님이시죠?]
그는 현재 변호사 자격이 취소된 상태로 최 씨에게는 사무장 자격으로 법률 자문을 해줬을 뿐이며, 합의금 요구는 개인적 친분에 따른 도움 요청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전 모 변호사 : 50억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정도 '지금 어려운 상황이니까 합의금이 필요하다, 그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도움을 주라'고 얘기한 거예요.]
그러면서 A 사의 기업 인수를 도와준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수시로 빠져나간 회삿돈 어디로 갔나 봤더니
전 변호사가 받고 있는 재판은 지난해 검찰이 기소한 '성지건설 임금체불' 사건입니다.
지난 2021년 말, 구속된 최대 주주를 대신해 대표를 맡은 전 변호사는 근로자 58명의 임금 등 약 52억 원을 체불한 혐의로 기소돼 오는 21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성지건설 전 직원 : 급여를 몇 달씩 안 받아도 30년 뭐 20년씩 했던 사람들이라 책임감들이 (있어서) 근무를 했던 것 같아요.]
[성지건설 전 직원 : 생계에 위협을 좀 많이 느낍니다. 평생직장으로 다녔는데 갑자기 회사가 이제 무너지게 되고.]
전 변호사는 재판에서 건설 경기 악화 등의 이유를 호소했는데, 계좌 내역에서는 수상한 자금 흐름이 눈에 띕니다.
대표 취임 이후 회삿돈이 전 변호사가 운영하는 로펌과 개인 회사 여러 곳으로 수시로 빠져나간 겁니다.
사건 수임에 대해 전 변호사는 문제없다는 입장입니다.
[전 모 변호사 : '몰아줬다' 이렇게 표현하지 마시고요. 제가 잘 알지 않습니까? 회사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제가 근무하는 데다가 그걸 갖다가 수임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개인 회사로 자금이 이체된 이유에 대해선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금으로 해서 다시 회사로 환입됐던가 아마 그랬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나간 돈이 훨씬 많았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이후 추가 입장을 통해 회사 간 대여금이 오가는 과정에서 계좌를 이용한 것일 뿐 사적 유용은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런 거래가 횡령 배임에 해당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와중에 또 다른 기업을 인수해 자금 사정은 더 나빠졌습니다.
[우리가 자금을 조금씩만 지원해 주면, (물건을) 팔고 나서 돈을 받을 수 있고 하면서 좀 나아지겠다 생각해서 그때 그렇게 한 거예요.]
전 변호사는 밀린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회사 자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상장사 옭아맨 한마디…"파산신청 하겠다"
전 변호사는 파산 신청을 활용해 상장사들을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파산 신청이 접수되면 상장사는 주가 폭락을 예상하면서도 공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스닥 상장사 B 사 대표 : 파산신청은 채권자나 채무자만 할 수 있는데, (전 변호사 측에 서) 주식을 두 주를 가지고 있는 주주라고 하면서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업무 방해를 한 거고.]
2020년 이후 전 변호사 측 로펌이 코스닥 기업을 상대로 파산 신청을 했다가 기각된 사건은 9개 기업, 20건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전체 파산 기각 건수의 4분의 1을 넘습니다.
애초 기각될 걸 알면서도 악재성 공시를 유도한 거 아니냔 지적이 나옵니다.
반면 전 변호사는 경영진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기 위한, 정당한 법적 절차였다는 입장입니다.
[전 모 변호사 : 법원 입장에서는 황당하게 보이지만 제 입장에서는 정당한 거예요. 법률적으로 그게 채권이 성립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최근 부산회생법원은 전 변호사 측이 낸 파산 신청을 기각하며, 거래처와 은행 등에 파산 신청 사실을 통보하고, 정작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는 등 파산 절차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 일정이나 예납금 납부를 미루거나, 재판 직전 취하하는 식으로 시간을 끌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신청 단계에서 요건을 지나치게 강화하면 신청이 위축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악의적 파산 신청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고 일본은 절차 개시 자체를 하지 않는 등 제도적 차이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공시 제도를 악용한 압박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안승근/코스닥협회 부회장 : 소송이라든지 이런 가처분에 대응할 어떤 조직과 뭐 이런 대기업에 비해서는 약하거든요. 자본시장에 큰 해악을 끼쳤을 경우에 이를 엄벌해서 다시 진입하지 못하도록.]
[양석조/변호사 (전 서울남부지검장) : 공시 제도의 남용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상의 사기적 부정거래', 즉 부정한 수단·계획·기교에 해당하는지 여 부, 그리고 '형법상의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가 성립하는지 여 부 등이 검토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전 변호사가 대표이사나 사내이사로 이름 올린 회사로 확인된 것만 최소 16곳.
그는 주주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하고 수임료 대신 공동 경영권을 받는 것일 뿐이라며 기업사냥꾼이란 일각의 비판에 대해선 부인했습니다.
[전 모 변호사 : 저는 항상 그러거든요. '경영권 찾으면 반반 경영(하자)'. 그건 나쁜 거 아니잖아요. 제 기술을 사용해서 하는 거니까.]
전 변호사는 최근 또 다른 기업 인수 과정에서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취재: 이현정, 영상취재: 설민환, 영상편집: 박나영. 디자인: 박태영·임찬혁·윤영제, VJ: 김준호, 작가: 박정선, 인턴: 황채현, 제작: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