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와 재난, 그 이후> 취재파일 시리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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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①] 수색·확인·재발방지…유족에게 넘어온 국가의 일
이순희 씨가 꽃을 들고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을 다시 찾았다. 사고가 난 공장 앞에는 희생자 23명을 기리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순희 씨는 물티슈를 꺼내 표지석을 닦고 그 위에 꽃을 올렸다. 한 달여 만에 찾은 현장이었다. 꽃은 갈 때마다 다르게 고른다고 했다. 딸이 좋아했던 색을 떠올려 어떤 날에는 분홍색을, 어떤 날에는 흰색 꽃을 가져간다. 표지석에는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행동하겠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조금 떨어진 파란 리본 조형물에는 더 직접적인 문장이 적혀 있었다. "
진상규명이 진정한 추모입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리셀 참사의 책임을 둘러싼 법적 절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심과 항소심을 거쳐 현재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아리셀참사대책위원회와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는 지난 9월 2일 대법원을 찾아 시민 1,981명이 참여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항소심 판결에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취지에 어긋나는 법리오해가 없는지 살피고, 박순관 대표에게 23명의 죽음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판단해 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그동안 수사와 재판은 화재가 난 순간뿐 아니라 아리셀 공장이 어떻게 운영됐는지를 함께 다뤘다. 검찰 수사에서는 화재로 숨진 노동자 23명 가운데 20명이 파견근로자로 파악됐다. 사망자 상당수가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사고를 당했다. 수사당국은 2024년 8월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과 대피 관련 안전조치 의무 위반, 파견 과정의 위법성과 관련한 혐의를 관련자들에게 적용했다.
고용관계와 안전교육, 회사의 안전관리 체계까지 한 사람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확인해야 할 사실이 됐다. 검찰은 박중언 총괄본부장 등 아리셀 관계자들이 생산 과정에서 공장 내부 구조를 변경하고 대피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치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가벽 뒤 출입구의 잠금장치 설치 경위와 사용 방식 등이 대피 환경과 관련된 문제라고 판단했다. 수사 과정에서는 파견근로자들이 충분한 안전보건교육을 받았는지, 비상시에 이용해야 할 대피로와 비상구 위치를 알고 있었는지도 문제가 됐다. 이 같은 안전교육과 대피 문제는 이후 재판에서도 주요 쟁점이 됐다. 아리셀이 2024년 4월분 군납 전지 품질검사에서 규격 미달 판정을 받은 뒤 생산 과정에 변화가 있었던 점도 수사와 재판에서 다뤄졌다. 수사당국은 생산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추가 인력이 투입됐고, 이 과정이 사고 위험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수사에서 드러난 사실이 모두 그대로 형사책임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피고인에게 어떤 법적 의무가 있었는지, 그 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의 관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법원의 판단은 달라졌다. 박순관 대표 측도 항소심에서 사실오인과 법리오해, 양형부당 등을 주장하며 혐의를 다퉜다. 이 사건에서 사고 원인을 밝히는 일은 단 하나의 원인을 찾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고 전에 회사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어떤 의무가 있었는지, 실제로 그 의무를 지켰는지까지 차례로 따져야 했다.
2025년 9월 1심은 박순관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나온 최고 형량이었다. 재판부는 박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인정하고,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해야 할 의무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형사책임 판단은 사고 순간 현장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에만 머물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사고 이전에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제대로 이행했는지도 법원이 살폈다. 1심 재판부는 사고 전 회사의 안전관리 의무 이행 여부를 중요하게 봤다. 리튬전지 취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사고 전 나타난 이상 징후를 충분히 관리했는지도 따졌다. 파견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교육과 대피 대책도 책임 판단의 근거가 됐고, 재판부는 이 같은 의무 위반과 사고 피해 사이의 관계도 인정했다.
그러나 일부 쟁점을 두고 법원의 판단은 달라졌다. 지난 4월 항소심 재판부는 박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항소심도 박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라는 점을 인정했고, 일부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도 인정했다. 다만 일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의무와 안전조치 의무에 대해서는 1심과 달리 판단했고, 양형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비상구 문제가 대표적이다. 1심은 사고가 난 공장 3동 2층의 비상구 설치·유지와 관련한 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항소심은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장과 그 건축물에 비상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층마다 별도의 비상구를 설치하라고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에 따라 사고가 난 3동 2층에 별도의 비상구를 설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 같은 일부 무죄 판단 등에 법리오해가 있다며 상고했다.
항소심에서 형량 판단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유족과의 합의였다. 1심 당시 피고인 측은 사망 피해자 18명의 유족과 합의했고, 다른 2명에 대해서는 일부 유족과 합의한 상태였다. 항소심에 이르러서는 사망자 23명 전원의 유족과 부상 피해자 전원까지 합의 범위가 넓어졌다. 두 재판부는 이 사실을 양형에 반영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1심은 합의를 고려하되 그 의미를 제한적으로 봤지만, 항소심은 합의한 유족이 이후 처벌을 원한다는 사정만으로 합의를 제한적으로 반영하면 피고인이 피해회복을 위한 합의에 소극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항소심은 합의 사실을 박 대표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로 1심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문제는 합의가 피해회복의 전부를 뜻하느냐는 데 있다. 손해를 금전적으로 배상받는 것은 분명 피해회복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회사 측과 합의했다고 해서 사고 원인에 대한 판단이나 책임자의 처벌에 대한 입장까지 정리됐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일부 유족은 회사 측과 합의한 뒤에도 처벌을 요구했고, 항소심 역시 일부 유족이 합의 이후에도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힌 점을 판결에서 언급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묻는 책임은 피해자 개인에 대한 배상에 머물지 않는다.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를 다했는지에 관한 책임까지 포함한다. 아리셀 재판은 결국 유족과의 합의가 이런 책임의 무게를 판단하는 데 어디까지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순희 씨는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억울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한 번의 감정 표현으로 지나간 말이 아니었다. 항소심 판결을 이야기할 때도, 사고 현장을 다시 둘러볼 때도 같은 말을 꺼냈다. 가족 입장에서는 사고를 피할 수 없는 불운이었다고 보는 것과, 누군가 지켜야 할 의무를 지켰다면 막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너무 억울해. 나는 그냥 끝까지 하고 싶은 게 너무 억울해서... 내가 애한테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많고 미안한 게 너무 많은데 애를 이렇게 보냈다는 게 너무 억울해서, 끝까지... 죄 지은 사람은 죗값을 치르고 (남은) 유해 수습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순희 씨가 재판 결과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형량 때문만은 아니다. 재판은 딸의 죽음을 어떤 사고로 설명할 것인지 정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화재가 피하기 어려운 사고였는지, 회사가 지켜야 할 의무를 지켰다면 막을 수 있었는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어디까지 있는지를 법원이 증거와 법률에 따라 판단한다. 1심과 항소심이 일부 쟁점에서 다른 결론을 내렸고 상고심이 진행 중인 만큼 법적 판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순희 씨에게 애도는 딸을 기억하는 일만이 아니라, 그 죽음이 어떻게 설명되는지를 끝까지 지켜보는 일이기도 하다. 참사에서 진상규명과 추모를 따로 떼기 어려운 이유다. (3편에서 계속)
방송 다시보기(2026.9.26 TV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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