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국제

정당방위 vs 살인면허…프랑스, 경찰 무력사용권 확대에 두동강

김영아 기자

입력 : 2026.09.21 17:15


▲ 프랑스 의회

프랑스 의회가 경찰과 헌병의 무기 사용을 정당방위로 전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인권 단체와 야당 일부에서 '살인 면허'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 7월 초 '총기나 무기를 사용한 경찰·헌병은 일단 법을 준수해 정당하게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현행법상 경찰이나 헌병이 총기 등 무기를 사용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구체적인 법적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사후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정안은 경찰이나 헌병이 법에서 정한 요건(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엄격한 비례성)에 따라 무기를 사용한 경우 일단 정당방위로 추정하도록 한 것입니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해당 무기 사용이 명백하게 과도했거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사실 등이 확인되면 이 추정은 뒤집힐 수 있습니다.

법안 지지자들은 경찰이 총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중에 형사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필요한 대응을 주저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경찰이 테러나 흉기 공격, 차량을 이용한 공격 등 긴급한 위협에 대응할 때는 사후적인 법적 판단보다 현장에서 시민과 동료의 생명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는 논리입니다.

법안을 찬성한 정부 역시 이 법안이 경찰들에게 백지 위임장을 주는 게 아니라 이미 합법적인 무력 사용을 한 경찰의 법적 불안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강조합니다.

이 법안은 7월 초 하원 승인을 얻은 후 상원 법제위원회에 법안이 접수돼 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인권 단체들은 그러나 이 법안이 공권력에 사실상 "살인 허가증"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며 상원 심사 저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이 경찰의 무력 사용을 일단 적법하다고 추정함으로써 사실상 위법의 입증 책임을 피해자 측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날 수도 파리와 남부 마르세유, 리옹, 툴루즈 등에선 약 5만 명이 거리에 나와 법안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대는 "권력이 커질수록 폭력은 더 심해진다", "살인 면허에 반대한다" 등의 팻말을 치켜들며 가두 행진에 나섰습니다.

파리에서 열린 시위에는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의원들도 참여했습니다.

마틸드 파노 LFI 하원 원내대표는 "경찰은 이미 사람을 죽이고 있다. 우리는 이 법안을 저지해야 한다"며 "공화국에서는 경찰의 면책 특권을 허용할 수 없다. 공화국에서는 다른 시민의 생사를 좌우할 권리를 가진 시민 집단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규탄했습니다.

그동안 지역 시민단체는 물론 LFI, 사회당, 녹색당 등 좌파 정당을 비롯해 150개 이상의 단체가 이 법안에 반대하며 "국가의 폭력을 멈추라"는 성명에 서명했습니다.

하원 웹사이트에 올라온 이 법안에 반대하는 청원에도 73만 명이 서명했지만, 지난 7월 하원 법제위원회에서 기각됐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