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다시 5% 가까이 급등했던 국제유가는 상승폭을 가까스로 줄이며 장을 마쳤다. 현지시간 어제(14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장 대비 1.02% 오른 배럴당 105.68달러,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전장 대비 1.34% 오른 배럴당 101.39달러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이 신속히, 그리고 절박하게 (미국과의) 합의를 원하고 있다"고 한 것이 상승폭을 그나마 줄였다. 하지만 현재 세계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좌충우돌이다. 중동산 원유가 이동하는 '초크 포인트(Choke Point)'에 대한 통제력을 사실상 상실한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앞으로 유가의 향배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는 이유이다. 페르시아 만에 오래 주둔한 미군의 전력이 약화된 기색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①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장악하려는 친이란 후티 반군을 저지해달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다급한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②또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는 원유 수송선의 항공 엄호와 호위 횟수를 하루 두 차례로 줄인 것에서도 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호르무즈의 중동전쟁 전선이 아라비아반도와 홍해로 확산되는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우디의 동서송유관..'생명줄'이 막혔나?
지난주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건은 이라크 쪽에서 친이란 민병대가 발사한 것으로 보이는 드론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송유관을 공격한 것이다. 이 '동서 파이프라인'은 길이 1천201km로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질러 홍해 연안의 얀부 항구로 이어진다.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지며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약 500만 배럴의 원유를 이 경로로 우회해 수출해왔고, 그래서 사우디 경제의 '생명줄'로 표현돼왔다. 특히 이번 공격은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이 모카항 등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주요 요충지를 빠르게 장악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후티 반군은 해협의 요충지 '두바브'와 '페림섬'도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연계된 선박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한 후 지나는 선박에 공격을 자주 가하면서 바브엘만데브 해협 항로도 통항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이었다. 대안 항로는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지만, 운하의 구조상 원유를 가득 실은 초대형 유조선이 통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우디 유조선들은 홍해 수에즈 만에 있는 이집트의 '아인수크나' 터미널로 먼저 원유를 운송한 후, 이를 이집트가 관리하는 '수메드 송유관'을 통해서 지중해 연안의 이집트 시디케리르 항으로 보낸 뒤, 운하를 통과한 유조선이 다시 원유를 시디케리르 항에서 싣고 지중해로 항해하는 복잡한 운송 루트까지 활용하고 있었다. 적재한 원유를 일부 송유관으로 보내서 선박의 하중을 줄여 운하를 통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현재 상황을 단순화하면, 이란은 호르무즈, 후티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막았고, 북쪽 수에즈 운하를 통해 긴 항로를 우회하는 루트도 동서송유관 공격으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는 형국이다. 이른바 '3중 봉쇄'의 현실화가 거론되는 이유이다. 홍해의 원유수송 차질에 따른 사우디아라비의 원유 수출량 감소는 국제유가 시장에는 결정적 악재였다. 전쟁 이후에도 원유 선물가를 배럴당 8,90 달러대로 지탱하던 버팀목이 사라진 셈이기 때문이다. 이란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의 해협 공세로 사우디의 8월 수출량은 하루 303만 배럴로 7월 대비 33% 감소한 상태였다. 미국·이란 전쟁 전의 700만 배럴에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AP통신은 지역 관계자를 인용해 송유관이 다시 가동되기까지 몇 주가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서 이란의 전략적 승부수가 부각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수송을 가로막고 있지만 미국의 역봉쇄로 해협을 완전히 장악하진 못하고 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려는 유조선에 대한 미군의 항공엄호와 선박 호위로 하루 10여척 정도의 통항이 최근에도 계속된 반면, 이란을 오가려는 유조선이나 선박은 미군의 봉쇄로 한 척도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알려진다. 미군의 호위로 간신히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유조선 역시 국제유가를 그나마 진정시키는 요인이다. 그래서 이란은 후티 반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마비를 유도하면서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의 약점인 국제유가와 물가를 흔드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티 반군의 공식입장은 "일단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사실상 반미 이란 전선이 호르무즈와 홍해 통제권을 장악해가는 형국이다.
약해진 미국, 홍해 방어 지원요청을 거절했나?
국제유가는 이란 외무부가 지난 11일 걸프 국가들과의 회의 계획을 알리며 "역내 현안들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업용 선박의 안전 항로 지정과 관련한 이란·오만 협상 결과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이 회담은 결국 연기됐다. 바레인이 이란의 걸프 지역 기반 시설 공격 등을 언급하며 불참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고, 무엇보다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의 사우디아라비아 공격 영향으로 사우디도 참석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후티 반군의 예상을 뛰어넘는 공세에 당황한 사우디는 미국에 직접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다. 로이터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최소 두 차례 전화해 후티와의 전투를 위한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고 전했는데, 미국은 이 요청을 거부한 상태이다. 당장 호르무즈 해협에 군사력을 집중한 상황에서 후티와의 새로운 전선을 만들지 않겠다는 게 미국의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군의 호르무즈 역봉쇄 활동이 원유를 실은 유조선의 통항을 일정 부분 유지하는데 집중된 것을 감안하면, 홍해의 상황 역시 급박한 이슈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국 원유 수송 루트에 대한 미국의 통제 여력이 상당히 약화된 상태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미군은 야간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제공하는 항공 엄호를 하루 두 차례 지정 시간대로 제한해, 사실상 호위 임무를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가 나왔다. 이는 중동에 배치된 미군의 전력이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사우디아라비아 등 원유 수출국들의 독자적인 군사 대응 가능성이 커졌음을 예고하는 흐름이어서 더 큰 우려를 낳는다. 이란이 원하는 것처럼 중동 전쟁이 확전될 조짐을 보여주는 것인데다, 홍해에 군 전력을 투입하지 못하는 미국의 대이란 협상력 또한 약화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유가 괜찮을까?..불어나는 부담, 장기화 여부 촉각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도 한때 내렸다가 가파르게 오른 상황이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수입 원유에 크게 의존한다. 지난해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57억 달러 어치의 원유를 수입했는데, 이는 전체 원유 수입액의 3분의 1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원유 특사 파견 등 원유 외교 강화로 원유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장거리 원유 수송비 보조 조치 등으로 70%에 이르던 원유 중동 의존도를 몇 달 만에 50%대로 낮췄다"고 직접 설명했다. '전략 비축유 스와프제'와 석유최고가격제, 그리고 정제유와 석유제품의 수출 물량 통제로 가격을 유지하는 상황을 설명한 것인데, 현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원유 이동 루트 통제력 약화에 따른 수입물량의 지속적 감소는 근본적인 난관으로 재등장했다.
정부는 9월과 10월의 원유 수입물량은 상당 부분 확보돼 전년 대비 90% 수준이어서 단기적으로 국내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고 밝혔다. 현재까지는 정부가 잘 통제하고 있다지만, 앞으로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타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정유 업계에서는 6개월 넘게 시행 중인 중인 '석유최고가격제가 해제되는 상황을 가정하면 현재 리터당 약 1,850원 선인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심리적 저항선인 2,000원을 바로 넘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또 생활유가의 억제책으로 상당수 소비자들이 석유 소비에 둔감해진 상황도 앞으로 부담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우려이다. 석유최고가격제는 유가상승 부담을 일정기간 유예하면서 정유업계의 부담을 정부 재정으로 사후보전방식으로 상쇄해주는 비상대책 성격의 구조이기 때문에 사태 장기화에 따른 비용 부담은 불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민을 키우고 있다.
중동산 원유의 대안인 캐나다와 호주산 등 비중동산 원유는 세계 각국의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치솟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수송 루트가 안정된 중동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원유를 수송할 때의 운임 비용도 오르면서 원유를 확보해도 비용이 불어난다. 미국·이란 전쟁이 일어나기 전, 한국 경제지표 전망은 국제유가를 배럴당 64달러 정도 선으로 예상한 상황에서 나왔다. 현 사태의 한계점은 11월 이후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가 말하는 것처럼 11월 초의 미국 중간선거 전에 이란과의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또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원유수입국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