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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4만 달러 열린다는 데 왜 내 사정은? [이브닝 브리핑]

우상욱 논설위원

입력 : 2026.09.08 17:39


드디어 1인당 소득 4만 달러 가나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 달러, 명실상부한 경제 선진국의 기준선 도달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2014년 이후 12년 동안 갇혀 있던 3만 달러벽을 드디어 넘어설 기세입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원·달러 환율의 안정, 원화 절상 덕분입니다. 미 달러화 기준 1인당 GNI는 명목 GNI를 당해 연평균 환율로 환산하는데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초반까지 내려앉아 달러 표시 소득이 크게 늘었습니다. 다만 이런 환율 안정도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조에 힘입었습니다. AI 인프라 수요 증가에 따른 반도체 단가 상승과 수출 증대는 기업 실적과 실질 무역손익의 개선으로 이어졌고 1,500원대까지 위협하던 환율을 꺾어 내렸습니다.

최근 우리 경제 흐름도 견조합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2분기 GDP 성장률이 0.6%입니다. 작년 4분기 -0.1%에서 올 1분기 1.8%로 급반등한 뒤 2분기에도 양호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제조업 영업이익이 화학제품, 운송장비 제조업, 서비스업의 도소매 등 여타 업종의 실적 개선을 이끌고 있다고 한은은 설명했습니다. 2분기 명목 GDP는 전 분기보다 9.2%, 전년 동기 대비로는 26.4% 늘었습니다. 1979년 3분기 27.7% 이후 47년 만에 최고치입니다. 2분기 명목 GNI가 8.8%, 실질 GNI는 3.1% 증가했습니다. 예상외 충격 없이 환율 안정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분석입니다.

1인당 GNI 4만 달러는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인구 5천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소득 4만 달러를 넘는 이른바 '50-40 클럽' 진입하기 때문입니다. 거대 내수 시장을 보유하면서 첨단 제조업·서비스업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선진 경제 대국을 뜻합니다. 전 세계에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5개국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올해 진입하게 되면 6번째 '50-40 클럽' 멤버가 되는 셈입니다.
8월 수출 역대 3위 반도체 사상 최대

왜 나는 안 느껴지지?

이쯤에서 많은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경제 상황이 좋고, 우리 국민 1인당 소득이 4만 달러(우리 돈 약 5천4백만 원)를 넘긴다는데 왜 나는 이렇게 삶이 팍팍하지? 왜 앞으로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안 느껴지지?' 지표와 체감 경기의 괴리가 큰 탓입니다. 1인당 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맞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반도체가 이끄는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은 눈부십니다. 반면 자영업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가계 체감소득 증가는 지표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초저출산 · 초고령화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생산연령인구의 급감은 가계의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 요인입니다. 인구 축소로 분모가 줄어 1인당 소득 수치는 유지되더라도 경제 활력은 위축될 위험이 큽니다. 이번 4만 달러 달성은 상당 부분 환율 안정세에 기대고 있습니다. 일종의 착시효과도 있습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 (사진=연합뉴스)

미래가 핑크 빛? 아니 회색 빛

4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흔들림 없는 탄탄대로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진입했던 선진국들도 산업 체질과 역량에 따라 운명이 엇갈렸습니다.

우선 미국과 같은 혁신 주도 지속 성장형이 있습니다. 빅테크와 자본시장 생태계를 바탕으로 1인당 생산성을 계속 끌어올렸습니다. 계속 국민소득이 치솟으면서 7~8만 달러대로 단숨에 직행한 경우입니다.

제조업·숙련기술 기반의 정체형 국가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독일과 일본입니다. 제조업 중심 경제 구조 속에서 인구 고령화와 에너지 전환, 디지털 전환 지연을 겪었습니다. 독일은 4만~5만 달러 박스권에 갇혔고 일본은 극심한 엔저와 디플레이션으로 3만 달러대로 후퇴했습니다.

내수·서비스업 중심의 기반 취약형입니다. 이탈리아는 남북 경제 격차, 경직된 노동시장, 생산성 저하로 인해 4만 달러 안팎에서 장기 횡보하는 모습입니다. 영국, 프랑스 등도 세계 시장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내수와 관광 등에 기댄 채 성장 정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등 국제 경제 상황에 따라 경제가 휘청거리며 반복적으로 위기를 겪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글로벌 통화 긴축이나 지정학적 리스크로 원화 약세가 재연되면 당장이라도 3만 달러대로 내려앉을 수 있습니다.
브뤼셀 EU 본부 (사진=AP, 연합뉴스)

'독일 ∙ 일본식 함정' 우리는 피할 수 있을까

위에 열거한 3가지 유형 중에 독일과 일본에 눈길이 갑니다. 한국 역시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약 26~28%로 높아 독일, 일본과 산업 DNA가 매우 흡사합니다. 두 나라의 고질적 병폐는 이미 우리에게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우선 제조업 강국으로 유럽 경제의 엔진이던 독일의 어려움부터 따져보겠습니다. 러시아산 저가 가스 공급 중단 등으로 맞은 에너지 쇼크가 가장 뼈아픕니다. 싸게 공급받던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정세 변화에 심각한 취약성을 노출했습니다. 내연기관차 중심의 기계식 제조업 성공 공식에 안주한 점도 문제입니다. 전기차나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 차량 전환이 지연되면서 압도적이던 국제 시장의 지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경직된 관료주의와 노동 규제로 인한 창업 생태계 위축도 지적됩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하던 것을 더 잘하려는 보수적 비즈니스 시각과 태도는 IT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주도권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인구 고령화에 대한 잘못된 대응이 재정지출 급증과 내수 시장 활력 감퇴를 불렀습니다. 무엇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보수적 금융 시스템이 일본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에너지 공급의 불안, 관료주의와 이로 인한 규제 개혁 부진, 고령화, 금융 시스템의 낙후성 등 우리나라도 이미 맞닥뜨린 문제가 태반입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중국의 기술 추격과 역전 시장 잠식까지 겪고 있습니다. 출산율 0.7명대라는 가혹한 조건도 더해졌습니다. 점증하는 사회적 갈등과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정치의 후진성도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암초입니다.

결국 4만 달러를 넘어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비용 절감형 공정 혁신"이 아니라 "시스템과 제도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제조업은 AI를 조합한 창조적 솔루션으로 중국의 압박을 넘어서야 합니다.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장기적 플랜과 제도 정비도 시급합니다. 무엇보다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한 교육과 노동 시스템의 전면적 개편이 필수입니다. 그것도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이뤄내야 합니다. 그래서 4만 달러 진입은 목표 도달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