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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경기도 광주대단지 사건···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생존권 외친 '최초의 대규모 도시 빈민 투쟁'

입력 : 2026.08.28 10:00


경기도 광주,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2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그림자 도시 - 1971 광주대단지 사건'이라는 부제로 경기도 광주대단지에서 벌어진 일을 조명했다.

박정희 정권 시대, 불도저라는 별명의 김현옥 시장은 서울시 재개발을 위해 서울 곳곳의 판자촌을 허물고 주민들을 경기도 광주대단지로 이주시켰다.

선 이주 후 개발로 진행된 이 과정에서 이주 단지에는 기본 인프라는커녕 수도와 전기조차 마련되지 않았고 주민들이 일할 곳도 없었다. 가난한 곳을 떠나와 더 가난한 삶을 살아가게 된 주민들.

이들은 척박한 삶을 버티며 병마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곳에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산모가 배가 고파 자신이 낳은 아기를 삶아 먹었다더라"는 인육 괴담이 퍼져 나간 것.

판자촌을 떠나왔더니 그들을 기다린 것은 천막촌이었고 이곳의 주민들은 어느 순간 무려 4만 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김 시장은 "사람들은 10만 명 정도 모아놓으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뜯어먹고 산다"라며 주민들의 각자도생을 바랐다.

그러나 이후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참사가 벌어지고 이 일로 대한민국 최초의 순살 아파트 창시자 김현옥 시장은 퇴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국회 입성을 꿈꾸던 차지철은 "건설 사업 2년 내 완성, 토지도 공짜로 다 나눠주고 세금도 5년 동안 없애겠다"라는 공약을 내걸었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시 뉴토피아로 여겨진 광주대단지. 이에 땅값은 매일매일 올랐고 이에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이들은 전재산을 털어 광주대단지의 땅을 샀다. 그런데 서울시는 분양가 거래 전면 금지를 선언하며 전매 입주자에게 분양가 4배에서 8배의 돈을 부과했다. 그리고 공지한 일자로부터 보름뒤 일시불로 지불하라는 것.

땅 값의 두 번 내는 것도 모자라 땅을 산 값의 67배를 물게 생긴 주민들. 또한 "분양지 배정을 받고 30일 이내에 입주정착지 않으면 무효가 되고 그 분양지는 타인에게 분양된다"라는 계약 조건을 숨겨 선량한 주민들을 우롱했다.

그런 그들에게 겨울은 너무나 가혹했다. 이에 이곳저곳에서 사망하는 이들이 속출했고 안타깝게 사망한 산모의 이야기는 인육 괴담으로 퍼지게 되었다.

결국 주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조직을 만들고 서울시에 "영세민 일자리 마련 및 긴급 구호 양곡 제공, 평당 가격 인하 및 분할 납부 상환"을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묵묵부답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기도에서는 취득세까지 부과했다.

분노한 주민들은 투쟁위원회를 만들고 주민 궐기 대회를 주도했다. 하지만 정부는 "누가 당신들한테 여기 와서 살라고 했냐. 싫으면 떠나라"라는 무책임한 말로 주민들의 요청을 무시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최소 3만 명 이상 모여 울분을 토로하고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서울 시장과의 협상을 기다렸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까지 서울 시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 순간 폭우가 쏟아졌다. 이에 분노하는 주민들은 임계치를 넘어섰고 현장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졌다.

버스를 점거하고 청와대로 이동한 주민들. 하지만 이들은 이들을 막아서는 공무원들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주민들.

그런데 그때 서울 시장과 주민 대표들의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졌다. 단 한 번의 궐기 대회로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 서울시.

사실 정부는 1년 전 광주대단지의 문제를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돈 때문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서울시의 발전을 위해서 희생된 광주대단지. 판자촌 주민들의 희생으로 서울시만 이익을 본 상황이었다. 이에 "앞마당 개발 강남 개발, 뒷마당 개발 광주대단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것.

정부는 광주대단지를 약자들이 향하는 곳이라 신경 쓰지 않았고 서울시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만족스러워했다. 강남과 광주대단지는 대한민국 발전의 빛과 그림자였던 것.

주민들의 궐기 대회 후 극적 타결된 주민들의 요구. 그런데 일각에서는 주동자들을 색출해 고문을 하며 이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이후 무죄 판결까지 받았지만 형사들은 이들에 대한 감시를 계속했다. 주민들이 또다시 결집할 것을 두려워한 정부가 벌인 일이었다.

그리고 광주대단지 주민들은 한 동안 자신이 사는 곳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곳은 어느 순간 가난한 불순분자들의 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24년 이 궐기 대회는 "8.10 광주대단지 성남 항쟁"이라는 공식 명칭을 얻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생존권을 외친 최초의 대규모 도시 빈민 투쟁으로 평가받게 된 것. 이는 가진 것 없던 이들의 마지막 결사 항쟁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정부가 약속을 지켰다면,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이날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가난, 그리고 또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서로를 돕고 이해하고 함께하는 이들 덕분에 그들은 또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