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경 인근에 있는 네팔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갑자기 발생한 큰 홍수가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내면서 홍수 발생 원인에 관심이 쏠립니다.
네팔 정부는 애초 지진에 따른 영향으로 추정했으나 지구 온난화로 인한 히말라야산맥의 기후변화 탓에 엄청난 규모의 빙하와 암석이 붕괴하면서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27일(현지 시간)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 일대에서 일어난 대규모 홍수로 지금까지 네팔에서 157명이 숨지고 외국인 391명을 포함한 484명이 실종됐습니다.
이 지역에서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던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한국인 9명도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네팔 접경 지역인 중국 티베트자치구 르카쩌(日喀則·시가체)시 지룽현에서도 전날 이번 홍수 원인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산사태가 발생해 3명이 사망하고 265명이 실종됐습니다.
전날 네팔 정부는 예비 조사 결과 티베트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빙하가 붕괴하면서 홍수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부 장관은 의회에서 오전 8시 37분 지진이 발생했고 3분 뒤에 돌발 홍수가 보고됐다며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 현지 보테코시강의 흐름이 차단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산사태로 인한 토사물과 바위가 보테코시강을 막았다가 갑자기 뚫리면서 흙탕물이 하류 지역으로 강하게 쏟아져 내렸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입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도 애초 바그마티주 라수와 지역에서 북쪽으로 47㎞ 떨어진 티베트 지역에서 규모 4.4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으나 이후 새로운 보고서를 내고 이를 정정했습니다.
USGS는 "장주기 지진파와 위성 사진 등을 추가로 분석한 결과 (규모 4.4가 아닌 규모 5.2 수준의) 지진 에너지는 오히려 산사태로 인해 발생했다"며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대규모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지진과 같은 충격이 발생했고 이후 빙하 붕괴와 토석류가 하류 지역으로 휩쓸려 내려가면서 큰 홍수가 발생했다는 분석입니다.
기상 전문가들은 히말라야산맥의 기후변화로 이번과 같은 대형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동안 계속 커졌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시아 인구 20억 명가량의 주요 물 공급원인 히말라야산맥에서는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아 없어지는 속도가 21세기 들어 2배 이상 더 빨라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 지역의 빙하 두께는 2000년 이전에는 연평균 34㎝씩 줄었으나 2000년 이후부터는 연간 73㎝씩 2배 이상 빨리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본부를 둔 통합산악발전국제센터(ICIMOD) 소속 기후 전문가들은 이번 돌발 홍수도 빙하에서 발생한 눈사태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습니다.
ICIMOD 소속 한 전문가는 "네팔 쪽 빙하에서 발생한 얼음과 바위가 강을 막으면서 하류로 갑작스러운 물살을 쏟아낸 상황이 원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빙하호 붕괴로 인한 홍수 발생 가능성과도 연결됩니다.
빙하호 붕괴는 빙하가 녹아 형성된 호수에서 막대한 양의 물이 갑자기 방출되는 현상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기온 상승으로 산악 빙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은 물은 빙하호를 형성할 수 있으며, 1990년대부터 빙하호의 수와 규모는 증가해왔습니다.
호수를 가둔 얼음과 암석으로 된 이른바 '자연 댐'이 갑자기 무너지면 홍수가 일어납니다.
기후 변화 때문에 앞으로 이런 홍수가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합니다.
이번에 산사태가 함께 발생한 티베트 르카쩌시 지룽현 지룽커우안 일대에서는 지난해 7월에도 대규모 산사태와 홍수가 일어났고, 네팔과 티베트에서 모두 합쳐 1명이 숨지고 28명이 실종됐습니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재해 이후 위성 영상을 분석한 결과 사고 지점 상류에는 빙하호 55개가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빙하호들의 전체 면적은 3.39㎢에 달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홍수도 빙하 표면의 호수에서 갑자기 물이 빠져나오면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미국 샌안토니오 텍사스대학교 소속 수문학자인 하팀 샤리프는 이번 홍수가 발생하기 전 강우량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이는 사실상 전 세계 모든 홍수 경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강우량을 토대로 한 '홍수 경보'가 울리지 않기 때문에 하류 지역 주민들이 대피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산악 지대에서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 거대한 흙탕물은 액체 콘크리트와 같은 치명적 조합을 형성한다며 이를 발견하고 도망치면 소용없기 때문에 유일한 해결책은 6m 높이의 언덕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토사와 흙탕물이 매우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내린 히말라야 산악지대의 'V'자 협곡도 인명피해를 키운 부수적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영국 레딩대학교 소속 연구원인 도로시 하인리히는 "산악 지형에서는 강이 일부 구간에서 상당히 좁아질 수 있다"며 "(눈사태나 산사태로 강이 막히면) 물이 많이 고이게 되고 (그것이 한꺼번에 터지면)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의 홍수가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대규모 토사와 험난한 지형 탓에 실종자 수색과 구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2차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ICIMOD 관계자는 "네팔과 중국 국경 지역의 강 상류에 여전히 막힌 부분이 남아 있다"며 "당국은 두번째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