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재산을 환수(국가 귀속)하기 위한 위원회가 올해 말 재출범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디까지 환수할지, 환수가 과연 가능할지 등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옵니다.
정부는 이미 2006∼2010년 1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운영해 친일반민족행위자 168명이 일제강점기 때 취득한 시가 약 2천106억 원 상당의 2천359필지를 국가에 귀속하도록 결정한 바 있습니다.
연말부터 운영되는 2기 조사위는 미진했던 친일재산 조사 기능을 복원해 은닉한 재산을 추가로 발굴하고 환수에 나설 예정입니다.
재산귀속 대상인 친일파와 환수 대상 축적 재산 등의 기준은 모두 법에 명시돼 있어 비교적 명확합니다.
최근 친일 행적이 조명되며 논란이 된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러나 친일 행적이 드러난 것과는 별개로 현행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정한 환수 대상과 재산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친일파의 재산 환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가 설치되면서 이후 4년간 진행됐습니다.
조사위가 2010년 발간한 '친일재산조사 4년의 발자취'를 보면 당시 재산 귀속 대상으로 정의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크게 '특별법 규정에 의한 행위자'와 '위원회 결정에 의한 행위자'로 나뉩니다.
특별법 규정에 의한 행위자는 ▲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하거나 모의한 사람 ▲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사람('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사람'으로 범위 확대) ▲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으로 활동한 사람 ▲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사람이 해당합니다.
다만 이들 중 작위를 거부 혹은 반납했거나 이후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위원회가 제외 결정을 했다면 예외로 인정됩니다.
특별법 규정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독립운동이나 항일운동에 참여한 사람 또는 그의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명령하는 등 친일의 정도가 아주 중대하다고 인정되면 위원회 결정으로 선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귀속 대상인 친일재산은 형식적 요건과 실질적 요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형식적 요건은 시기상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러일전쟁 개전(1904년)부터 광복을 맞이한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취득한 재산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일제에 협력한 대가'라는 실질적 요건이 추가됩니다.

그러나 친일 대가성을 현재 시점에서 입증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를 고려해 특별법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취득한 재산은 친일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을 넣어 당사자 측이 반증하지 않는 한 친일 재산으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친일 재산을 후손이 상속받거나 친일 재산임을 알면서도 유증(상속)이나 증여받은 경우에는 여전히 국가 귀속 대상입니다.
그러나 제3자가 선의 또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했다면 귀속하지 못합니다.
다만 친일 재산을 처분한 사람은 국가 소유권을 침해해 부당 이득을 얻었다고 보고 환수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조사위는 활동 4년간 총 168명의 친일행위자로부터 2천359필지를 국가에 귀속하도록 결정했습니다.
또 제3자에게 매각된 116필지에 대해서는 친일재산확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들 필지는 당시 시가 기준 총 2천373억 원에 해당합니다.
친일파 중 가장 많은 재산에 대해 귀속 결정이 내려진 인물은 후작 이해승입니다.
그의 재산 중 시가 322여억 원 상당의 192필지에 대해 귀속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더해 특별법 시행 후 후손이 매각한 14필지, 시가 229억여 원 상당에 대해서는 친일 재산 확인 결정을 통해 부당이득으로 귀속이 결정됐습니다.
대표 '매국노' 이완용의 친일 재산은 시가 1억7천여만 원 상당의 16필지가 귀속 결정됐습니다.
그러나 친일재산으로 귀속 결정이 내려졌다고 해서 모두 국가에 귀속된 것은 아닙니다.
이에 불복한 후손들이 소송을 냈기 때문입니다.

'친일재산조사 4년의 발자취'에 따르면 2010년 6월 23일 기준으로 재산을 귀속 당한 후손이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은 총 72건입니다.
후손들은 ▲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제강점기에 취득한 재산을 모두 친일재산으로 추정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한다 ▲ 후손이 독립운동을 했으니 국가귀속결정은 지나치다 ▲ 작위를 한일합병의 공으로 받은 것이 아니다 등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특히 이해승의 후손과 정부는 오랜 기간 소송을 벌였습니다.
이해승의 후손 측은 "조부가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이라는 이유로 후작 작위를 받았을 뿐 한일합병의 공이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특별법상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2010년 192필지 전체에 대한 귀속 결정이 취소됐습니다.
이런 판결에 비판이 일자 국회는 법을 개정해 '한일합병의 공'이라는 요건을 삭제했습니다.
정부는 개정된 법을 적용해 이해승의 후손을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재차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2024년 대법원은 '확정판결에 따라 친일재산귀속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된 경우에는 개정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개정법 부칙의 단서 조항을 들어 애초 귀속 대상이 아니었던 1필지(4㎡)만 국가에 반환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기존 귀속 결정과 새로 확인된 친일재산을 둘러싼 소송은 현재 법무부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5 법무연감'에 따르면 법무부는 총 95건의 소송을 위원회로부터 승계해 수행했고, 이 중 92건에 대해 승소(일부 승소 포함, 승소율 약 97%)했습니다.
법무부는 위원회에서 승계한 소송 외에도 2022년까지 추가로 확인된 친일재산 의심 토지에 대해 총 8건의 소송을 제기해 그중 7건에 대해 국가 승소(일부 승소 포함)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2024년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의 '친일재산의 매각대금 또는 보상금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을 권리남용으로 배척하는 판결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그동안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유보했던 토지들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여기에는 지난해 이해승 후손이 토지를 매각하고 받은 78억 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 등이 포함됩니다.
특별법에 국가에 귀속된 친일재산 등을 독립유공자를 위해 우선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있습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친일 재산 매각을 통해 조성된 누적 기금은 약 1천240억 원으로, 보훈부는 이를 재원으로 독립유공자 유족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의 '독립유공자 예우 강화를 위한 재정 및 제도의 개선 과제' 보고서(2025)에 따르면 친일재산 매각 실적이 부진해 기금의 건전한 운용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토지 매각 대금은 2021년 57억 원, 2022년 153억 원에서 2023∼2024년에는 각각 9억, 18억 원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독립유공자 유족 생활지원금은 2022년 이래 매년 900억 원대가 집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부족한 예산은 일반 회계에서 약 900억 원가량을 전입해 충당하고 있습니다.
보훈부 관계자는 "기상관망대 자리 등 이미 국가에 편입된 토지는 각 소관 부처가 관리하고 있고, 임야·수질보존구역 등 법령상 매각이 제한된 토지가 많다"며 "외진 곳에 있어 매각이 잘되지 않는 토지들은 현재 보훈부가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제처에 따르면 올해 6월 개정돼 12월 3일 시행될 특별법은 친일재산조사위를 다시 구성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개정법에서는 친일 재산뿐만 아니라 재산 처분의 대가까지 환수 대상으로 명시해 재산의 은닉 가능성을 낮췄습니다.
이전에도 후손이 재산을 처분했을 시 부당 이득을 얻은 것으로 보고 환수하는 작업을 해왔으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자 이를 법 조문에 명시한 것입니다.
또 친일 재산을 적발해 신고한 사람 등에 대한 포상금 규정을 신설해 친일 재산 찾기에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합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앞서 "2기 조사위가 출범하면 최소 325억 원 이상의 친일 재산을 환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정 장관이 언급한 325억 원은 제보 혹은 민원이 접수됐으나 법무부가 직접 조사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권한에 한계가 있어 현재까지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재산의 규모, 즉 총 115필지의 2025년 공시지가를 합한 것입니다.
법무부는 "현행 친일재산귀속법은 조사 권한을 위원회에 부여하고 있으며, 법무부는 소송 수행에 필요한 범위에서 관계 기관에 협조를 요청할 권한만 있다"며 "법무부에는 친일 재산을 전문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별도의 인력·조직이 없어, 개별 재산을 검토해 소송을 제기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환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1기 위원회 활동 당시에는 확립되지 않았던 법리가 이후 법원을 통해 구체화한 만큼, 2기 위원회에서는 이러한 판례 법리를 토대로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친일 재산을 추가로 조사·발굴하고 환수 여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증조부의 친일 논란이 벌어진 배우 하영의 집안 재산이 이번 법에 의해 귀속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제시된 기준 외에도 위원회에서 중대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경우에도 지정할 수 있는데, 만약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본다면 안상호를 조사할 수도 있다"며 "다만 과거의 기준으로 봤을 때 지정은 어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다른 역사학계 관계자도 "특정 인물의 친일 행적이 언급된다고 해도, 증거 확보의 어려움 등 때문에 친일의 대가로 인한 재산 축적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