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달라이더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첫 확정판결이 나왔다.
☞기사 바로보기 <'배달 라이더 노동자성 첫 인정' 판결 확정(2026.7.30)> 사건은 2021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달대행업체와 '업무위탁 계약'을 맺고 일하던 한 라이더가 계약 종료를 통보받고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업체는 업무위탁계약을 해지한 것이라고 했지만, 라이더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업체의 지휘·관리 아래 일했기 때문에 계약 해지가 아니라 해고라고 주장했다. 소송에서 먼저 가려야 할 것은 계약 종료의 정당성이 아니라 이 라이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였다. 근로자라면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받아야 하고, 해고가 무효라면 그 기간의 임금 상당액도 청구할 수 있다. 반대로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으면 계약 종료에는 근로기준법상 해고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서울고등법원은 2026년 7월 3일, 1심을 뒤집고 해당 라이더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했다. 따라서 2021년 12월 계약 종료 역시 업무위탁계약 해지가 아니라 근로자에 대한 해고라고 판단했다. 업체가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고는 무효라고 봤다. 이후 피고 업체가 상고하지 않으면서 이번 판결은 7월 29일 확정됐다. 원고 측은 앱과 관제 프로그램, 증인 진술 등 항소심 판단의 토대가 된 자료 상당수가 이미 1심에서도 제출돼 있었고, 두 심급이 이를 다르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항소심은 라이더가 주문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실제 배차가 업체의 알고리즘과 관리자의 지시·통제·제재 아래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폈다.
범유경/배달라이더 해고무효확인소송 원고 소송대리인
"증거 자체는 1심에서 이미 많이 제출됐습니다. 피고 회사가 가지고 있던 애플리케이션이나 관제 프로그램을 증거보전 신청해서 법원에서 시연했고, 증인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항소심 판결문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데 주로 인용된 증거들도 1심에서 제출됐던 것들이 많습니다. 결국 이미 제출된 증거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어떤 판단의 근거로 쓸 것인지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사실관계도 일부 달라지긴 했지만, 법적인 평가가 달라진 것입니다."
'주문 콜 선택의 자유' 뒤에는 플랫폼의 배차 통제가 있었다
항소심은 먼저 이 업체가 실제로 어떤 사업을 했는지 살폈다. 사업의 외형만 보면 업체가 이용자와 가맹점, 라이더를 연결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단순 중개 사업으로 이해될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실제 사업의 핵심이 가맹점에서 상품을 구매한 이용자에게 라이더를 통해 상품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있다고 봤다. 라이더 역시 업체 사업의 본질인 배달 업무를 수행하는 핵심 인력으로 판단했다. 라이더는 이용자나 가맹점과 직접 법률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업체가 제공한 앱을 통해서만 주문을 받아 배달할 수 있었다. 법원은 이런 구조에서 라이더가 업체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판단했다.
주문 콜 선택권은 이런 판단을 보여주는 핵심 대목이다. 라이더가 앱 화면에 나타난 주문 가운데 하나를 직접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라이더에게 표시되는 주문 목록은 업체가 미리 정한 기준에 따라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구성했다. 관리자용 프로그램에는 특정 라이더에게 특정 가맹점의 주문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고, 관리자가 이미 이뤄진 배차를 직접 취소할 수도 있었다. 라이더는 화면에 뜬 주문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어떤 주문이 제시될지까지 온전히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법원은 봤다. 또 관리자는 특정 라이더가 스스로 배차를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차단하거나 다시 허용할 수도 있었다.
취소에 따른 결과도 달랐다. 관리자가 배차를 취소한 경우에는 라이더에게 페널티가 부과되지 않았지만, 라이더가 직접 배차를 취소하면 경제적인 페널티를 부담했다. 라이더가 배차 취소를 요청해도 관리자가 그 사유가 정당한지를 판단해 직접 취소할지, 라이더가 페널티를 부담하고 스스로 취소하게 할지를 결정했다. 항소심은 이를 근거로 배차 취소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권도 업체가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배차 이후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도 관리가 이뤄졌다. 업체는 관제 프로그램으로 라이더의 위치와 이동 경로, 수행 중인 배달 건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동 동선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면 라이더에게 연락해 배차 취소를 권고했고, 실제로 관리자가 직접 배차를 취소하기도 했다.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출근이나 업무 복귀를 독려했다. 단체 대화방에서는 오래된 주문부터 순서대로 배차하도록 하거나, 한 가게에서 두 건 이상을 묶어 배달할 때 5분 이상 차이가 나는 배차는 잡지 말라는 등의 구체적인 지시도 반복됐다. 법원은 실시간 위치정보를 확인하는 전산 시스템이 단순히 배달 현황을 파악하는 수준을 넘어 라이더의 업무 수행을 감독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묶음배달 한도는 단순한 업무방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건별로 보수를 받는 라이더에게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배달 건수는 수입과 직결됐다. 업체는 결근이 잦거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등 근무 수행이 불량한 라이더의 묶음배달 상한을 낮췄다. 한도가 줄면 같은 시간에 수행할 수 있는 배달 건수와 수입도 줄어들 수 있다. 항소심은 묶음배달 상한을 조정하는 행위가 라이더의 경제적 이익과 업무 수행 방식에 강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봤다. 또 이를 업체의 지시사항을 따르도록 하는 주요 관리·감독 수단으로 평가했다.
범유경/배달라이더 해고무효확인소송 원고 소송대리인
"회사는 두 가지 프로그램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라이더들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고, 라이더들은 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어떤 상품을 픽업해 배달할 것인지를 고르거나 선택한 배차를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관리자용 관제 프로그램입니다. 라이더가 앱을 사용하는 순간 수집된 GPS 정보가 관리자 프로그램에 실시간으로 표시됐습니다. 관리자들은 라이더들이 어디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었고,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동선이 발생하면 배차를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보수 체계도 항소심이 중요하게 본 부분이다. 기본 배달료의 산정 방식과 거리·지역 등에 따른 구체적인 기준은 업체가 정했고, 지역·시간대·날씨 등에 따른 할증 기준도 업체가 설정했다. 페널티와 수수료 역시 업체의 기준과 내부 정책에 따라 결정됐다. 따라서 라이더가 이용자나 가맹점과 배달요금의 계산 방식이나 지급 기준을 임의로 바꿀 수는 없었다. 이 사건 앱을 통하지 않고 이용자에게 직접 영업해 추가적인 이윤을 낼 수도 없었다. 물론 라이더가 배달을 많이 하면 그만큼 수입은 늘었다. 하지만 라이더가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몇 건을 배달할지였고, 한 건당 얼마를 받을지는 업체가 정한 기준에 따라 결정됐다. 즉 일을 더 많이 해서 수입을 늘릴 수는 있었지만, 직접 가격을 정하거나 별도의 고객을 확보해 추가 이윤을 내는 구조는 아니었다. 그래서 항소심은 배달 건수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독립사업자가 영업 과정에서 감수하는 사업상의 위험이라고 보지 않았다. 업체가 설계한 운영정책에 따라 생긴 결과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런 점을 종합해 고정급이 없고 건별로 보수를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이 라이더를 독립사업자로 볼 수 없다고 봤다.
그런데 근로자성이 인정되자 다음 문제가 생겼다. 해고 기간에 받을 임금을 얼마로 볼 것인지였다. 이 라이더에게는 고정 월급도, 정해진 소정근로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으로 월 임금을 계산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법원은 해고 직전 3개월의 수입만 보지 않고, 실제로 일한 전체 기간의 수입을 기준으로 월평균 수입을 계산했다. 근로기간이 길지 않은 데다 성수기나 계절에 따라 수입 변동성이 있었 때문에 직전 3개월만으로 평소 수입 수준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다음에는 실제 수입에서 어떤 비용을 빼야 하는지도 따졌다. 오토바이 리스비와 수리비, 과태료는 공제했지만 산재보험료는 빼지 않았다. 산재보험료는 근로자가 아니라 사용자인 업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즉 법원은 먼저 어느 기간의 수입을 기준으로 삼을지 정하고, 그다음 실제 수입에서 어떤 비용을 제외할지를 따져 해고 기간의 월 임금을 계산했다.
앱을 켤 자유만으로 개인사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확정판결로 곧바로 모든 배달라이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업체와 한 라이더 사이의 구체적인 노동관계에 대한 판단이었던 만큼 다른 플랫폼에서 일하는 라이더에게 동일한 결론이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 역시 근로자성은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제 근로제공 관계를 놓고 업무 내용과 지휘·감독, 근무시간과 근무장소, 독립적인 사업 가능성, 사업상 위험, 보수의 성격, 전속성 등 여러 조건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라이더가 앱에 접속하고 주문 수락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법원은 겉으로만 보면 라이더가 원하는 시간에 앱에 접속하고, 휴식과 주문 수락 여부를 선택하며, 원하는 때 일을 끝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업체가 라이더와 근무시간을 미리 협의했고, 출근과 업무 복귀를 독려했으며, 사전에 정한 근무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줬다고 판단했다. 선택권의 존재만 떼어 본 것이 아니라 그 선택권이 실제 업무 관리와 제재 구조 속에서 어떻게 행사됐는지를 함께 본 것이다.
특히 법원은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감이 배분되고 업무 수행 방식이 정해지는 과정에 알고리즘이나 여러 사업참여자가 관여하는 노무관리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사건에서도 앱의 알고리즘과 관제 프로그램뿐 아니라 관리자의 구체적인 지시와 배차 통제, 페널티와 묶음배달 상한 조정 등이 상당한 지휘·감독이 있었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범유경/배달라이더 해고무효확인소송 원고 소송대리인
"이번 판결은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합치되게 해석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례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이 적극적인 판단을 피하고 입법론에 기대는 경우가 있는데, 이 판결은 해석으로 돌파할 수 있다면 돌파하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새로운 디지털 통제를 통해 일한다는 점 때문에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통적인 업무를 수행하면서 관리와 통제의 방식만 디지털화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혁신이라기보다 착시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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