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사회

[AFTER 8NEWS] "전기 팔아 '167만 원' 벌었다"…미국은 되는데 한국은 안 되는 이유

장선이 기자

입력 : 2026.08.19 17:54

동영상

00:00 전기 팔아 '1,200달러' 벌었다, 비결은?
02:04 쌀 때 충전했다가 비쌀 때 꺼내 쓰는 '냉장고'
04:23 사막의 실리콘밸리, 전기가 도시의 경쟁력
06:26 '배터리 강국' 우리나라엔 왜 없을까?

1. 전기 팔아 '1,200달러' 벌었다, 비결은?
미국 텍사스의 한 가정집. 전력회사가 보낸 정산 화면입니다. "당신은 태양광으로 돈을 받고 있습니다(You're getting paid for your solar!)" 이번 달 123달러, 지금까지 1,200달러, 전기를 사 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 팔아서 버는 집입니다. 비결은 이 상자인데요, 여행용 캐리어만 한 이 상자가 이 집을 바꿔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세요? 우리나라 세계적인 배터리 강국이죠. 그런데 왜 우리 집엔 이런 게 없을까요? 그 답을 찾으러 텍사스에 다녀왔습니다. 이 집주인 크레그 킨키드 씨입니다. 1년 반 전 지붕에 태양광 패널 50장을 얹고 전기를 담아두는 배터리 ESS 4대를 창고에 들였습니다. 들어간 돈은 우리 돈 5천만 원 정도,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한 달에 400에서 500달러, 그러니까 60만 원 넘게 나오던 전기요금이 지금은 20에 30달러, 3, 4만 원 정도만 나옵니다. 적지 않은 돈을 쓴 이유 이겁니다.

[크레그 킨키드 / ESS 설치 가정 : 집에 있는 아내와 딸을 위해 비상 전원을 갖추고 싶었습니다. 여름에 에어컨이 꺼지거나, 겨울에 난방이 끊길 때를 대비해서요.]

텍사스는 토네이도 허리케인, 겨울 한파까지 다 오는 동네입니다. 그렇다 보니 정전이 잦죠. 그런데 이 집은 동네가 다 꺼져도 안 꺼집니다. 지난 월드컵 결승전 날이었습니다.

[크레그 킨키드 / ESS 설치 가정 : 월드컵 결승전 날 동네 전체가 정전됐어요. 손님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저희 집은 배터리 덕분에 경기를 끝까지 다 같이 봤습니다.]

낮에 지붕이 만든 전기를 이 배터리에 쟁여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휴대폰 안에 있습니다. 지붕 패널이 지금 전기를 얼마나 만드는지, 배터리가 얼마나 찼는지, 이 순간 전기를 사는지 파는지 실시간으로 다 보입니다. 해가 좋은 날에 남는 전기를 전력회사에 팝니다. 킨키드 씨가 가입한 요금제에선 판 전기값을 산 값 그대로 쳐서 요금에서 빼줍니다. 그렇게 번 돈이 아까 그 1,200달러입니다.

2. 쌀 때 충전했다가 비쌀 때 꺼내 쓰는 '냉장고'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태양광 없이 배터리만 달아도 이득이 될까요? 텍사스에서 주택용 배터리를 파는 회사 CEO는 본인 집에 태양광 없이 배터리만 두고 전기가 쌀 때 충전했다가 비쌀 때 꺼내 쓴답니다. 쌀 때 사서 쟁여놨다가 비쌀 때 꺼내 먹는 냉장고인 셈이죠. 전기값 차이가 돈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냉장고의 값 자체도 확 싸졌습니다. 비결은 배터리 속 재료가 바뀐 겁니다. 예전에는 니켈, 코발트 같은 비싼 금속을 썼습니다. 지금 대세는 LFP 리튬인산철 배터리인데요. 철과 인산은 흔하고 값싼 재료입니다. 전기를 담는 양은 조금 적지만 집이나 발전소 옆에 세워두는 창고엔 그게 흠이 아닌 거죠. 대신 값이 싸고 상대적으로 화재 위험이 낮습니다. 우리 배터리 기업들도 지금 이 LFP로 옮겨 타는 중이고 킨키드 씨네 그 배터리 회사에도 국내 기업이 공급합니다. 그런데 이 시장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브라이언 파스코 / 시그니처 솔라 CEO : 예전엔 남는 전기를 되팔 수 있는 주가 많았는데, 이제는 제도가 바뀌어 못 파는 곳이 늘고 있어요. 그게 배터리 수요가 폭증하는 이유입니다. 파는 대신 저장해서 내가 쓰는 거죠.]

태양광 전기는 낮에 남고 쓰는 건 저녁입니다. 못 팔면 버려야 하니까 담아뒀다 쓰겠다는 거죠 자, 팔 수 있으면 팔아서 돈. 못 팔면 아껴서 돈. 어느 쪽이든 남는 겁니다. 그리고 이 남는 장사가 가정집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애리조나 사막입니다.

[여의도 22배 규모의 초대형 발전 단지입니다. 미국에 새로 지어지는 전력 설비 열에 여덟이, 이런 태양광과 배터리입니다.]

미국 최대 규모급 복합발전단지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깔리는 배터리도 국내 기업이 미국에 있는 공장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이 단지가 돌아가는 방식, 텍사스의 그 집과 똑같은데요. 낮에 담아서 전력이 필요한 시간에 꺼내 보냅니다. 스케일만 다를 뿐이죠.

[지금 사막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이 배터리에 저장됐다가, 저녁이면 캘리포니아까지 팔려 나갑니다.]

3. 사막의 실리콘밸리, 전기가 도시의 경쟁력
그런데 배터리가 필요한 곳은 발전소만이 아닙니다. 차로 2시간 피닉스입니다. 사막의 실리콘밸리로 떠오르는 이 도시에 TSMC의 반도체 공장, 또 국내 기업의 배터리 공장 그리고 AI 데이터 센터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피닉스시에서 기업 유치를 총괄하는 국장의 말입니다.

[ 라이언 투힐 / 美 피닉스시 경제개발국장 : 미래의 반도체 칩을 만드는 글로벌 기업들과 제조 기반을 계속 확장하려면, 그걸 뒷받침할 전력 용량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 그 전기를 어디서 구하느냐. 이 동네엔 답이 하늘에 있습니다. 1년 300일 넘게 해가 쨍쨍합니다.

[크리스틴 맥케이 / 그레이터 피닉스 경제위원회(GPEC) 회장 : 애리조나의 배터리·에너지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1년에 340일 해가 뜨는 애리조나에선, 그 에너지를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죠. 이 성장세는 일시적인 붐이 아니라, 계속 커질 겁니다.]

전기가 도시의 경쟁력이 된 겁니다. 큰 데이터센터 한 곳을 돌리는 데 드는 전기는 웬만한 도시 하나 몫입니다. 여러분이 챗GPT에 던지는 질문들도 이런 데서 처리됩니다. 그런데 발전소를 짓는 데는 5년에서 10년이 걸리는데 데이터센터는 1, 2년이면 들어섭니다. 그럼 전기가 수요를 못 따라가게 되겠죠. 그 틈을 바로 배터리가 메우고 있는 겁니다.

[트리스탄 도허티 / 엔지에너지솔루션 버테크 상품전략팀장 : 데이터센터는 현대의 새로운 중공업입니다. 지역 전력망에 엄청난 수요를 가하고 있죠. ESS는 이 수요를 전력망에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시장이 폭발했습니다. 올 상반기 3개에 공급된 ESS 배터리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71% 늘었습니다.

4. '배터리 강국' 우리나라엔 왜 없을까?
자,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배터리 잘 만드는 우리나라, 왜 우리 집엔 없을까요? 답을 찾다가 이상한 걸 하나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거대한 전기창고가 있긴 있습니다. 산속 저수지에 물을 퍼 올렸다가 떨어뜨려 전기를 만드는 '양수발전'. 사실상 우리나라의 대표 저장장치입니다. 그런데 이 창고, 텍사스의 그 집과는 움직이는 방식이 다릅니다. 전기가 남을 때 물을 올렸다가 필요할 때 내려보내 전력 수급을 맞춥니다. 다만 사업자가 전기값을 보고 자유롭게 담고 파는 구조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장 장치가 없는 게 아니라 일할 값을 쳐줄 시장이 아직 덜 열린 겁니다. 우리도 버리는 전기가 있습니다. 봄 가을이면 전력 수요보다 발전량이 많아져서 태양광 발전소 출력을 강제로 낮추거나 꺼버리는 일이 되풀이됩니다. 미국에서는 남는 전기를 담아 돈을 아끼는데
우리는 남는 전기가 있어도 제대로 담아 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 전문가의 답은 이랬습니다.

[이시영 /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 국내에는 아파트같이 집단 거주하는 형태가 굉장히 많고, 미국은 단독주택이나 이런 형태들이 많다 보니까 그런 배터리 같은 것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북미 쪽이 편한 것 같고요. 국내 같은 경우는 가정용 전기요금이 약간의 변동은 있긴 하지만 시간대별 차이나 이런 부분들이 그렇게 크지 않은 부분, 이런 부분도 좀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핵심은 요금입니다. 우리 가정용 전기는 값이 하루 종일 거의 같습니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꺼내 쓸, 그 쌀 때와 비쌀 때가 없는 겁니다. 즉 쟁여놓을 이유가 없는 거죠. 일을 시키려면 일한 만큼 벌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시장이 아직은 없습니다.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시영 /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 출력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부분도 보상을 해야 하는데, 지금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유연성 자원에 대한 어떤 거래나 시장 제도가 되게 미비합니다. 거래소에서 그런 것들을 활용을 하긴 하지만 시장 서비스나 그런 보상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기 때문에, ESS 사업자들이 국내에서 자발적으로 설비를 투입한다고 했을 때 '내가 시장에서 보상을 충분히 못 받겠구나'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측면입니다.]

우선 장기계약으로 수익을 보장해 배터리를 들여놓고 제주에서는 전기를 사고파는 시험까지 시작했습니다. 자, 텍사스의 그 화면 다시 보겠습니다. 당신은 태양광으로 돈을 받고 있습니다. 배터리는 이미 우리가 만들고 있습니다. 남은 건 이 문장이 우리 고지서에도 찍히게 할 시장입니다.

(취재 : 장선이,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 배문산, 영상편집 : 김혜주, 디자인 : 이정주, 제작 :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