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가 넘었는데 외신 속보를 기다리는 국내 전문가와 투자자들이 넘쳐났다. 한국시간 어제(12일) 늦은 밤에 나온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때문이었다. 새벽 시간 미 연준의 금리 결정에 시선을 집중했던 모습에서 한 단계 확대된 새 풍속도였다. 하반기 증시의 향배를 좌우할 '금리'변수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7월 CPI 결과에 시장은 안도했다.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했지만, 6월의 3.5%보다 떨어졌고, 전월 대비 상승률도 0.1%로 모두 시장의 전망치 안으로 들어왔다.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대비 2.5% 올라 역시 6월의 2.6%보다 낮았다. 해당 기간 국제유가의 잠정적 안정의 효과였다. 이날 발표 전까지 미국 연준이 오는 9월 FOMC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절반 정도(51%)로 예상했던 시장은, 발표 직후 60%로 기대를 다소 높였다.
그런데 기대했던 뉴욕증시 상승랠리는 없었다. 주요 지수가 혼조 마감한 것이다. AI와 반도체 관련 주가를 올린 것은 금리 안도감보다는 AI 인프라 관련주의 호실적에 살아난 AI 낙관론이었다.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9월 FOMC 회의 전까지 물가지표 발표가 한 차례 더 남아 있어 상황이 바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다시 상승한 국제유가로 8월 물가의 상승 가능성에 더 신경을 쓴 것이다. 미국 물가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현실이 확인된 셈이다.
"해상의 현실은 달라"..호르무즈의 난항
애매한 휴전 직후 2천여 척의 선박이 빠져나왔지만,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닫혔다. 미국 월스트릿저널(WSJ)은 추적 데이터를 인용해 지난 11일에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14척이며, 이 중 11척은 이란이 통제하는 항로를 이용했다고 전했다. 전쟁 전에 하루 130여 척, 6월에 하루 평균 33척, 7월 26척의 통행량보다 더 희박한 것이다. 이 신문은 '이란의 제한적인 드론·미사일 공격만으로 해운사와 보험사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이란이 관리하는 항로를 이용하는 선택이 늘고 있다는 것인데, 미국의 수사적 외면에도 이란이 해협 통제력을 사실상 확보했음을 암시한다. 7월 초 배럴당 70대 달러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8,90달러 대로 다시 올랐다.
트럼프는 12일(현지시간)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며, 미군의 대이란 해상봉쇄에 대해 이란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해상의 현실은 다르다. 뉴욕타임스(NYT)는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송유관 건설에 거액을 쏟아 붓고 있다고 전했다. 협상은 진행 중이라지만, 이란은 호르무즈 재개방을 위한 조건으로 중동 내 미군의 철수, 대이란 해상봉쇄 해제, 전쟁 배상금 지급, 대이란 제재와 동결자산 해제를 다시 내걸었다. 이 조건대로라면 미국의 패전 수준이다. 이 상태로 가면 원유 수송의 병목현상 장기화와 비용증가는 장기화를 넘어 고착화할 전망이다. 원유소비국들의 손실과 물가압박만 남은 셈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중간선거 D-82..탄약 떨어진 트럼프의 선택은?
차량 이동이 생활의 기본인 미국의 생활 유가 상승은 심각하다. 미국 국민의 심리적 안정선인 갤런 당 3달러는 무너졌고, 현재는 4달러 선이다. 세금이 높고 물류비가 추가되는 서부 저지대 지역은 5달러를 넘은 상태이다. 미국의 정치 매체 '더힐'은 12일(현지시간)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와 다국적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관한 긍정 의견은 33%, 부정 의견은 62%라고 인용했다. 이달 7∼10일 미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응답자들의 지지 정당에 따라 큰 차이가 났지만, 지난해 1월 임기 초와 비교하면 20%포인트 안팎으로 폭락한 수준이다.
문제는 자력으로 전쟁을 종료할 능력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란 상대 전쟁에 사용되는 탄약 재고가 "위험할 정도로 부족(dangerously low)"하다는 미 언론 보도를 국방부는 공식 부인했지만, 전쟁 수행을 넘어 전략적 가치가 여전한 아시아 도련선 등 다른 지역의 억지력 유지 부담을 생각하면 11월 중간선거와 맞물려 대이란 공세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상황에서 국제유가 불안을 키울 무력행사는 정치적 자충수가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파악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에 모든 것을 걸며 트럼프 행정부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시장도 감지하는 중이다. 사실상의 패전을 인정할 수도 없는 트럼프는 피폐해진 경제상황 속에 연간 80%라는 살인적 물가상승을 겪고 있는 이란 경제의 붕괴 위기를 활용하려 하고 있다. 애매한 대치와 호르무즈의 불안정 장기화가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이란의 핵관련 양보를 챙기고, 호르무즈 '서비스 통행료 수입'을 인정하는 선에서 잠정적으로 상황을 봉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같은 아시아의 원유수입국 입장에선 황당한 결말이다.
자금 조달비용에 초조한 '빅테크'와 주식시장
지난 7월 미 연준의 FOMC 회의는 케빈 워시 의장이 '말로만 매파'임을 짐작케 하는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리 인상은 해결책의 일부일 순 있지만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라며, 물가 대응에 소극적인 뉘앙스를 표현한 것이다. 월가에선 트럼프의 노골적인 금리인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는 아니라도, 그가 금리인하 내지는 동결의 근거를 지속적으로 찾고 있음이 선명해졌다는 평가다. 올해 남은 FOMC 회의는 9월과 10월, 12월까지 세 번이다.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는 6월보다 2만3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왔는데, 예상치 '8만3000명 증가'보다 무려 10만6000명이나 적은 수치였다. 고용 부진은 7월 CPI와 더불어 연준의 9월 금리동결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매파' 연준 이사들의 입장은 여전히 단호하다. '수잔 콜린스' 보스턴 연방은행 총재는 1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저소득과 중간소득 가구가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는 얘기를 점점 더 많이 듣는다"며 "한 달짜리 고용지표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8월에 다시 오른 국제유가에 이은 미국의 8월 CPI 발표가 다시 고비가 될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결국 미국·이란 전쟁의 상황이 남은 세 차례 FOMC를 좌우할 최대 변수가 된 형국이다. 더욱이 미국 국채금리는 이미 1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른 상태이다. AI산업 주도권 경쟁 속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잉여현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시장 금리가 오를수록 이들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오르고, 시설투자의 핵심인 반도체 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다. 반도체 쏠림이 여전히 강한 한국 주식시장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금리상승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음은 이미 지난달 31일 엔화 가치 부양을 위해 시장에 대규모로 개입한 사건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엔화 약세가 더 심해지면 일본 통화당국이 달러 확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대거 매도할 수 있고, 이 경우 미 국채 금리가 더 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낳은 이례적 개입이었다. 이런 대응도 호르무즈 해협의 교착에 따른 유가 재상승 시나리오 앞에는 무력해진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갈수록 초조하게 페르시아 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