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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강점기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항일 독립운동가가 서울 서대문형무소보다 더 많았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서대문형무소는 목숨 건 대일 항쟁을 기억하는 대표 장소가 됐지만 대구형무소는 지금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TBC 서은진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하늘 높이 솟은 붉은 담장.
그 옆에 세운 망루에서 수감자를 감시했던 서울 서대문형무소입니다.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뒤 광복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갇힌 곳입니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지역 출신인 허위, 이강년 의병장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옥사로 들어가면 나라 잃은 민족의 수난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들이 갇힌 독방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햇빛도 들지 않고 화장실도 없는 이곳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는데요.
이곳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처참한 역사를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교과서로 배운 독립운동의 실상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피부로 와닿습니다.
[최율/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람객(고교생) : 오기 전에는 광복이 그냥 나라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날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하니까 좀 더 소중하고 값진 것 같습니다.]
통곡의 미루나무가 지키는 사형장.
교수형에 사용된 형구가 달린 집행장에는 살인적인 더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돕니다.
이처럼 독립운동의 아픔을 간직한 서대문형무소는 1998년 역사관으로 개관해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매년 60만 명이 찾고 있습니다.
[이진희/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장 : 일반 관람객들이 오셔서 옥사를 체험하면서 독립운동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서대문형무소와 같은 해 문을 열었던 대구형무소는 1971년 철거돼 그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형무소 터에 자리한 삼덕교회 2층에 지난해 역사관이 설치됐지만 사진과 건물 모형으로만 옛 모습을 짐작할 뿐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대구형무소 순국 독립운동가는 225명으로 서대문형무소보다 30명이 더 많습니다.
대구형무소에 투옥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기에는 역사관이 너무 작습니다.
[정인열/광복회 대구시지부 사무국장 : 대구형무소는 실물들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너무 아쉽고 두 번째 이제 그에 관한 연구 자료가 수집이 안 돼 있고 또 발굴이 안 되다 보니까 일단은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게 너무 적어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연면적이 8천200여㎡인데 반해 대구형무소역사관은 121㎡로 68분 1에 불과합니다.
대구형무소의 유적이라고는 당시 사용했던 벽돌 몇 장이 전부입니다.
항일 성지라고 자부하지만 대구의 독립 유산들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노태희 TBC)
TBC 서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