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일하고 사흘을 앓아누웠던 끔찍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비로소 제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된 기분이에요."
20여 년 전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태평양을 건넜던 한 한인 여성은 오랜 병마와 미국 사회의 차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키 160cm에 몸무게가 40kg까지 줄며 일상생활조차 어려웠던 그는 남편의 지지 속에 50대에 필라테스 대회 출전을 앞둔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카운티 코로나시에 거주하는 재미동포 켈리 임(54) 씨의 이야기가 동포사회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오는 9월 19일 열리는 '2026 서울시립대학교 총장배 제2회 K-필라테스 콘테스트' 참가를 위해 방한한 임 씨는 오늘(13일)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병마와 차별의 벽을 넘어, 필라테스 선수로서 고국 무대에 설 수 있어 꿈만 같다"고 말했습니다.
1999년 시민권자 남편과 함께 미국에 정착한 임 씨는 상업 광고 메이크업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첫아이 임신과 함께 찾아온 건강이 악화하면서 일상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임 씨는 "섬유근육통과 류머티즘 관절염이 한꺼번에 찾아오면서 24시간 내내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며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편두통과 메니에르병까지 겹치며 시력과 청력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특히 극심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메니에르병은 당시 거주 지역에 제대로 된 검사 기기조차 없어, 2014년 한국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추벽증후군으로 두 차례 무릎 수술을 겪으며 한쪽 하체 근육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걷기도 어려워졌습니다.
피부가 갈라지고 입술이 까맣게 변하는 증상도 나타났습니다.
임 씨가 새로운 돌파구로 선택한 것은 운동이었습니다.

2022년 가을 인근 필라테스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동양인이 0.02%에 불과한 백인 위주의 지역 사회에서 중년의 동양인 여성을 향한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기초적인 영어가 서툴렀던 그에게 스튜디오 강사는 노골적인 텃세와 인종 차별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임 씨는 "수업 중에 강사가 다른 수강생들 앞에서 대놓고 무안을 주거나, 인사를 건네도 철저히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면서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무시와 냉대 속에서도 스튜디오를 꾸준히 찾았고, 요가까지 도전했습니다.
꾸준한 운동은 몸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40kg까지 줄었던 몸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수십 년간 그를 괴롭히던 전신 통증도 차츰 줄었습니다.
임 씨는 이제 단순한 재활 차원을 넘어 '선수'라는 새로운 타이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년 만에 방한해 처음으로 필라테스 대회에 출전한 그는 오는 9월 K-필라테스 콘테스트에도 도전합니다.
그의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최근 훈련 과정에서 어깨 근육이 파열돼 큰 통증을 겪었습니다.
고관절 상태도 좋지 않아 향후 수술이 필요할 수 있는 등 건강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병상에 갇혀 있던 시절과 달리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남편의 배려 덕분에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그는 매일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국땅에서 병마, 편견과 싸우는 것은 외롭고 험난한 길이었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끝에 몸도 마음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죠. 지금은 하루하루 땀 흘리며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합니다."
(사진=켈리 임 씨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