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은 업무보고 종료 이후 브리핑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추진하려는 '한반도 평화 공존 발전 구상'이 "이상주의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통일부가 남북과 미중 등 4자 대화 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선 '디스카운트'해서 받아들여달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정 장관도 다음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상이 있어야 현실을 바꾼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견 노출에 따른 우려를 묻자 한 통일부 당국자는 "이견 노출을 저희가 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통일부의 업무보고는 실제 '이상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외교적 언어를 구사하는 외교부가 유달리 비외교적 언사로 대응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외교부의 수장이 통일부 수장의 발언을 깎아 내리는 듯한 평가를 하고, 통일부 수장도 곧장 불편함을 드러내는 일련의 과정은 날 것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듯한 인상을 줬습니다. 하나의 정부에서 역할을 분담하며 '짜고 치기'를 통해 유리하게 상황을 만들어가는 사례도 있지만, 이번엔 단언컨대 그러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부처 간, 혹은 부처 장관들 간 이견이 비교적 잘 드러나는 것은 이재명 정부가 전향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국정 기조를 갖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국무회의가 생중계되고 업무보고 역시 모두 생중계되다보니 그 전에는 알기 어려웠던 정부의 '속살'이 쉽게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정보를 통제하고 가리기 급급했던 지난 정부 때와 달리 국정 운영의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러한 패턴은 초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정책 구상 단계의 미완성 모습과 정돈되지 않은 이견까지 노출되면서 바라보는 이들의 피로감도 쌓이고 있는 듯 보입니다.
특정 파벌이나 부처에 일방적으로 힘을 싣지 않고 논쟁을 유도하며 백가쟁명식으로 판을 깔아주는 것은 국정 초기의 활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목소리가 치열하게 경합한 뒤, 결국 하나의 정제된 방향으로 수렴되고 정리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이견 속에서 중심을 잡고 결단을 내리는 '조율·정리 역량'이야말로 국정 운영의 진짜 실력입니다. '날것의 국정'이 주는 신선함의 유효기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과정의 공개'를 넘어 '정제된 결과물과 결단력'으로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토론이 실력인 것처럼 '원 보이스'도 실력일 겁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