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 루사를 기억하십니까
3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잊혀진 사람들 - 태풍 루사'라는 부제로 최대 사상자와 역대 재산 피해액 1위를 기록했던 최악의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습격했던 날을 추적했다.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가 습격했다. 전국이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온 가운데 직격탄으로 태풍의 영향을 받은 곳은 강원도 강릉시.
실종자 8명, 사망자 238명으로 2000년 이후 최대 사상자를 만들어낸 태풍 루사. 이로 인한 당시 재산 피해액은 무려 5조 1479억, 역대 태풍 재산 피해액 1위였다.
장마 시즌의 평균 강수량의 몇 배를 뛰어넘는 1일 강수량으로 산사태와 도로 유실 등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고 이에 구조를 요청하는 이들의 빗발치는 전화에 강릉 소방서는 아비규환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더 큰일이 생겼다. 하류 저지대의 홍수 피해를 막는 역할을 하던 강릉의 오봉댐 수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 폭우로 인한 강릉 일대의 정전으로 수문을 컨트롤할 수 없었던 상황에 이대로 수문을 열지 못하고 오봉댐이 붕괴할 경우 강릉시가 한반도에서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릉시 곳곳에서는 대피가 이어지고 있었다. 고지대로 대피하는 사람들 가운데 규태 씨 가족도 있었다. 차를 타고 고지대로 피하고 있던 규태 씨와 가족들. 차량이 급류에 떠내려 가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가족들과 차에서 벗어난 규태 씨.
그는 한쪽에는 아내를 한쪽에는 두 딸을 안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팔의 힘이 풀려버렸고 그대로 아내가 급류에 휩쓸려가 버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규태 씨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딸이라도 지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또 나아가던 순간 언제 사라졌는지 둘째 딸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첫째 딸의 손까지 놓쳐버린 규태 씨. 본인도 어느 순간 거센 물살에 떠내려갔다.
이후 겨우 목숨을 구한 규태 씨. 하지만 아내와 두 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생사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붕괴 위험의 오봉댐의 수문이 열렸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대급 강수량에 수문을 열어 빠져나가는 물보다 밀려들어오는 물이 더 많았고 이에 최대 수위까지 단 1미터 만을 남기고 있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강릉 시장은 강릉시 전체에 대한 긴급 대피를 명령할지 고민에 빠졌다. 강릉시 전체가 대피를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대피 명령이 더 큰 패닉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강릉 시장은 태풍이 지나갈 것을 기다리기로 하고 긴급 대피 명령을 하지 않았다.
그 후 밤이 되고 극적으로 비가 그치며 오봉댐의 수위도 낮아졌고 그렇게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강릉시는 폐허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당시 강릉시 수재민만 2,3000여 명. 소방대원들은 다음날부터 곧바로 실종자들에 대한 수색에 나섰다.
태풍 루사 상륙 당시 강릉 철벽 부대의 중대장으로 근무 중이었던 김영곤 대위. 부대원 모두 피신한 후 겨우 아내에게 안부 전화를 했던 그가 다음 날 실종 소식을 전해왔다.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한 직후 교통 통제를 위해 나갔던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의 구조 요청을 무시하지 못하고 직접 돕기 위해 갔고, 노부부를 구조하던 상황에서 중심을 잃고 급류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던 것.
이에 그의 아내는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는 기도를 하며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흘 동안 남편을 찾지 못했고 모두가 지쳐가던 그때 남편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생일 선물처럼 나타났던 윤정 씨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김 대위는 그렇게 사랑했던 가족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피 도중 가족과 헤어진 규태 씨. 그는 며칠 후 잠자는 것처럼 하늘로 떠나간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이어 37일 만에 근처 논에서 첫째 딸의 시신을 찾았고 한 달 뒤 둘째의 시신을 찾았다.
당시를 떠올리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봐야지, 제정신이면 이상해"라고 말한 규태 씨. 그는 자신이 손을 놓쳐 딸을 잃은 것이라며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태풍 루사가 상륙한 8월 31일은 둘째의 생일. 그토록 꿈꾸던 바다 여행도 가 보지 못하고 둘째 딸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규태 씨는 여전히 딸과 아내를 그리워했다.
막대한 피해를 끼친 태풍의 이름은 영구 제명. 이에 태풍 루사의 이름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24년이 지난 지금 태풍 루사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도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규태 씨는 여전히 가족과 머물던 곳에서 살고 있고, 아빠의 영정 앞에서 천진하게 웃던 영곤 씨의 딸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단 하루 만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이들. 누군가는 그날의 기억 때문에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지금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살아가고 있다. 태풍 루사의 이름은 지워도 피해를 입은 그들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태풍 속에 뛰어들었던 이들은 영원히 잊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