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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단하려 항암 주사까지…모자보건법은 영원한 '뜨거운 감자'? [취재파일]

박하정 기자

입력 : 2026.07.27 17:31|수정 : 2026.07.27 20:23


7년이 지났어도 여전한 입법 공백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개정 논의가 언급될 때마다 의료계, 종교계, 여성계, 법조계 등 각계각층이 들끓곤 했습니다. 바로 모자보건법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019년 4월 11일을 기점으로 이 모자보건법은 뜨거운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됐습니다. 그날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 1항, 즉 여성이 약물이나 다른 방법으로 낙태했을 때 처벌한다는 조항과, 제270조, 의사 등이 여성을 낙태하게 했을 때 처벌한다는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두 조항 모두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형법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예외적인 경우 몇 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낙태 전체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던 터라 사실상 모자보건법과 연동된 형태였는데, 이 형법 조항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으면서 모자보건법 개정 논쟁에도 불이 붙게 됐습니다.

산부인과, 낙태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른 해당 조항 개정 시한은 2020년 12월 31일이었지만 국회는 그때까지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고 해당 조항은 그날을 기점으로 효력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입법 공백은 2026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처벌 조항이 효력을 잃었지만, 낙태를 어떤 경우에, 임신 몇 주 차까지, 또 어떤 방식을 통해 하는 것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담은 모자보건법 제14조 및 시행령 15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조항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낙태를 해도 처벌하는 조항이 사라지면서 모든 임신중절수술이 사실상 가능해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명확하게 이 모자보건법 조항이 정리되진 않은 탓에 의료 현장의 혼란은 여전합니다. 최근에는 논쟁의 축이 하나 더 생긴 모양새입니다. 미프진으로 대표되는 임신중단 약물의 도입, 즉 합법화 여부입니다. 역시 앞서 언급한 형법 제269조 1항에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하면 처벌한다는 조항은 사라졌지만, 약물로써 임신중단을 하는 것을 '허용'한 법률 조항은 어디에도 없는 탓에, 여전히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신중단 약물 사용을 허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98번째 국정과제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과 약물 도입"

앞서 소개한, 여전히 남아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 조항에 붙은 이름은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입니다. 이 조항은, 의사가 법률이 규정한 5가지 경우에만 여성에게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성이나 그 배우자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임신을 지속하면 여성의 건강에 심각한 해를 입을 경우 등이 그 5가지에 포함됩니다. 또 같은 법 시행령 제15조는 앞선 이런 조건에 더불어, 임신 '24주 이내'일 때만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행법대로라면 이런 조건이 아닐 때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면 안 되고, 다만 하더라도 처벌 규정은 없는, 애매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2019년 4월 이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 앉았다를 반복하던 이 모자보건법 조항이 다시 한 번 조명을 받게 된 건, 지난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였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대신해 만들어졌던 국정기획위원회가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펴냈는데, 여기에 98번째 국정과제로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이라는 항목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성·재생산 건강권 보장을 위해, 임신중지 법·제도를 개선하고 임신중지 약물을 도입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42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도 직접 임신중지 약물에 대한 언급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성평등가족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정부는 모른 척 하고 방치하고 있는 그런 상태" 아니냐며 임신중지 약물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여러 부처가 함께 이 부분을 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답했고 이에 이 대통령은 "숙고를 몇 년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재차 지적했습니다. 궁극적으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잇따르자 이 대통령은 "법률이 명확하게 되지 않는 한 행정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는 것이냐"며 계속 고민해 보자고 일단 토론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났습니다.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도 비슷한 대화는 반복됐습니다. 여성들이 의사의 처방 없이 정품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임신중지 약물을 해외 직구나 중고 거래를 통해 음지에서 구해다 먹고 있는 현실을 또 다시 지적하면서, 이 대통령은 "적정하게 투약할 수 있게 해줘야지 이런 식으로 정부가 가는 건 무책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법 체계가 완비되면 저희는 행정을 하는 것"이라고,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법 개정 전이라도 식약처에서 (약을) 허용해 주면 된다"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답을 이어갔습니다. 그런 대화를 보며 "법 밖에 방치하면서 정부는 책임을 모면하겠지만 국민들은 위험에 빠지는 것"이라고, 이 대통령은 현실을 진단했습니다.
 

임신중단 위해 항암 주사까지 찾는 현실

그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여성들이 당장 시급한 임신중단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X와 같은 SNS상에서 임신중지 약물로 쓰이는 미프진을 검색하면 '미프진을 구한다', 혹은 '미프진을 판다'는 글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의사의 진단도 없이, 약물을 암암리에 구해 여성들이 먹고 있는 겁니다. 이럴 경우 약을 먹었다 해도 그 이후 임신중단이 완전히 됐는지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적발된 임신중지 의약품 온라인 불법 판매 건수는 모두 2천641건입니다. 일반 쇼핑몰이나 SNS, 중고 거래 플랫폼 등, 판매가 이뤄지는 곳도 다양했습니다.

세계 101개국에서 이미 쓰고 있는 약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법' 상태의 약을 음지에서 구해 먹는 것에 더해, 항암 주사를 택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바로 MTX 주사입니다. 원래 백혈병이나 골육종 등의 치료 목적으로 허가가 난 주사제인 메토트렉세이트(MTX)를, 임신중지를 위해 쓰고 있는 겁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원래 이 약은 허가 외 목적으로, 자궁 외 임신의 경우에만 임신종결을 위해 써왔다고 합니다. 실제 기자가 지난주 경기도의 한 산부인과를 찾아 임신중단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병원에서는 수술과 이 MTX 주사,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안내했습니다. 주사 2번을 맞는 데에 85만 원이라고 안내한 병원 관계자는, 위험하진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몸에 좋다 안 좋다고 말하기보다는 어쨌든 좋은 세포도 죽이는 항암제인 만큼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MTX 주사를 '자궁 내' 임신일 때도 임신중단을 위해 쓴다는 병원도 있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MTX 주사를 검색하면 이 주사를 임신중단에 쓴다는 산부인과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궁에 매우 안전하다'는 광고글이 함께 적힌 곳도 있었는데, 직접 전화를 걸어 '자궁 내' 임신이어도 MTX 주사를 맞을 수 있느냐고 상담을 하자 임신 초기 수술이 부담스러운 여성들이 이 주사를 많이 찾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합법 낙태약 없어 항암 주사 찾는 여성들
사실 이 MTX 주사가 최근에 새롭게 떠오른, 여성들의 선택지는 아닙니다. 무려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이 MTX 주사의 존재가 정부 당국의 문서에 언급됩니다. 지난 2009년 11월 식약처가 의약품안전국장 명의로 의약계에 보낸 '의약품 안전성 서한'이 그 사례입니다(당시엔 낙태죄에 대해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오기 전입니다). 이 MTX 주사제가 허가 용도가 아닌 '불법 낙태'를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고 있어, 오용과 부작용 발생 등 안전성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한 식약처는, 의사와 약사들을 향해 허가사항 외 사용은 적절하지 않다고 경고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식약처는 이 약을 투여받은 환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들도 나열했습니다. 난자형성 이상, 난소기능부전, 불임, 출혈성 장염, 각종 중증 감염증 등 여러 이상반응이 보고된 바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임신중단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넘어 이런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약물을 여성들이 최소한 17년 동안이나 계속 임신중단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건데, 이를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 하는 선택'이라고만 손가락질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다른 안전할 수 있는 선택지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힌 상황에서 그저 내몰리고만 있었던 건 아닌지 짚어봐야 한단 의미입니다. 그 동안 이런 실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관계 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말 그대로 '법 밖에 방치하면서 책임을 모면하고 있기만 한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 논의의 장이 열리긴 했나

형법상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을 이야기하기 전에도, 우리나라 정부가 완전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헌재 결정 1년여가 지난 2020년 11월, 당시 문재인 정부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우선 형법 개정안에서는 임신 14주 이내에는 임신중단이 특별한 조건 없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사회·경제적 이유'를 포함해 몇 가지 경우에는 임신 24주까지 임신중단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경우에는, 헌재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취지를 반영해, 앞서 소개한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조항을 아예 삭제했습니다. 또 제2조 정의 규정에서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이라는 표현 가운데 '수술'을 빼 '인공임신중절'로 바꾸고, 이 의미를 '약물 투여나 수술 등 의학적으로 인정된 방법으로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와 그 부속물을 인공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시켜 임신을 종결하는 행위'로 풀어씀으로써,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합법화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하지만 이로부터 2년이 흐른 뒤에야 해당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상정됐고,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난 2024년까지 특별한 논의의 진전은 없었습니다. 결국 이 정부안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산부인과, 낙태
그리고 이재명 정부 들어 국정기획위원회의 공언 이후 새롭게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잇따라 발의됐습니다. 2025년 7월과 12월에는 민주당 남인순, 박주민 의원이, 2025년 11월에는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이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모두 헌재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이 만든 입법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 하지만, 큰 틀에서 남인순, 박주민 의원안과 조배숙 의원안은 그 방향을 달리합니다. 큰 차이를 보이는 남인순 의원안과 조배숙 의원안만을 우선 살펴보겠습니다. 낙태가 비범죄화한지 6년이 넘었음에도 임신중지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가 없고 의료적 접근이 음성화한 탓에 여성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이 크다며, 남 의원은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조항을 아예 삭제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니까 5가지로 제한된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 조건을 아예 없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더 확대하는 겁니다. 또 제2조 정의에서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인공임신중지'로 바꿔, 수술뿐 아니라 약물로도 임신중단을 가능하게 하고, 한발 더 나아가 여기에 보험급여를 적용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반면 조배숙 의원은 무엇보다 태아가 생명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낙태와 살인의 경계에 대한 국민 의식이 모호해졌다면서, 현재 모자보건법 시행령이 담고 있는 인공임신중절 허용한계 주수 24주를, 상위법인 모자보건법 자체로 옮겨와 주수 22주로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인공임신중절을 요청했을 때 의사가 거부를 해도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게 하는 조항을 신설합니다. 임신중지 약물 도입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지난 3월, 이런 여러 가지 시각들을 담은 법안들은 함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고 그다음 날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이 1소위에 참석한 이스란 당시 보건복지부 1차관은 제14조를 중심으로 모자보건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큰 만큼, 정부가 정리된 안을 마련한 뒤에 논의가 계속됐으면 한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계속 논의가 도돌이표가 될 상황을 우려하며 기한을 정하거나 일부라도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고, 이어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가능하면 정부가 합의안을 내는 게 맞다고 본다며, 한두 달 내에 정부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재차 기한을 설정할 것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질문에 이 차관은 '늦어도 상반기에 논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상반기가 지나 하반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정부안이 나올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꼭 법 개정이 전제가 돼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겁니다. '임신 몇 주까지 임신중단을 허용할 것인지'를 논쟁하기 시작하면 밤을 샐 일인데 그렇게 할 사안은 아니니, 실용적으로 접근하자는 겁니다. 그러면서 '의사의 재량'이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습니다. 의사가 하는 일이 사람의 목숨에 대해서도 판단하는 것인 만큼, 의사가 태아의 생명 존중과 여성의 건강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임신중단 약물 처방 여부를 상황에 따라 판단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여성들이 아무런 처방과 관리 없이 음지에서 투약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치열하게 논쟁해 정부가 '밤을 새어' 봤는지, 정부 차원에서 약속한 상반기 내 정부안을 만들기 위해 여야를 포함해 여러 시민사회와 치열한 논의 끝에 의견 수렴을 해봤는지, 그에 대한 설명은 없이 의사 개개인에게 그 무거운 윤리적 판단의 굴레를 떠넘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장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국회와 정부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대체입법과 제도 정비 의무를 방기"했다며 "합법적인 사용 주수와 허용 기준이 명시된 모자보건법 개정안 등 명확한 법률적 테두리가 없는 상태에서 의사의 자의적 판단만으로 약물을 처방하게 하는 것은, 의료 현장을 사법적 리스크와 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비겁한 행태"라고 꼬집었습니다.

합법 낙태약 없어 항암 주사 찾는 여성들 

시대상을 반영해 온 모자보건법…2026년이라면?

1973년 2월 8일 제정된 첫 번째 모자보건법과 현행 모자보건법의 제2조 정의를 비교해 보면,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몇 개의 단어들이 눈에 띕니다. 불임수술, 수태조절, 가족사업 등이 그것입니다. 이 단어들은 모자보건법이 처음 탄생하게 된 이유가, 효과적인 가족계획사업의 추진, 즉 당시로서는 인구 감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데에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 성장에 매진하려 했던 박정희 정권은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고 그 가운데 인구정책도 한 축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양재모 가족계획협회 이사장은 '가족계획사업에 매년 1억 원씩을 투입해 출생률을 42에서 21로 낮춘다고 가정했을 때, 그에 따라 출생 방지된 아기에 대한 양육비 절약액은 투자액의 100배도 넘을 것'이라는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3명 자녀를 3년 터울로 낳고 35세에는 단산하자'는 이른바 '3·3·35' 운동에도 피임을 통한 가족계획사업은 난항을 겪었고, 이에 정부는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법적 조치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사회 기저에 깔린 가부장적 인식과 생명 존중을 외친 종교계 등의 반발로 여러 차례 실패를 거친 끝에, 박정희 정권은 결국 모자보건법을 통과시키고 1973년 5월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갑니다. 이 당시에는 형법에서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던 상황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합법화하고 난관수술이나 정관수술과 같은 영구불임시술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수단으로서 모자보건법이 기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이후 모자보건법 개정의 역사는 시대상에 따라 변화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2005년, 인구 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된 것과 발맞춰 모자보건법에는 산후조리업에 대한 규정이 명문화했고, 2009년에는 모자보건법의 '모성'을 정의하며 임산부뿐 아니라 '가임기 여성'도 이에 포함하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저출산 시대의 모성 및 영유아 건강 증진 대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고 법제처는 개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불임시술과 피임시술에 대한 내용은 삭제됐으며, 체외수정 시술비 지원사업 등의 법적 근거가 새롭게 마련됐습니다. 2015년에는 '난임' 개념이 새롭게 모자보건법에 명시됐습니다. 국민의 적극적인 임신과 출산을 유도해 저출산 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단 게 법 개정 이유였습니다. 결국, 모자보건법은 출발부터 가족계획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던 하나의 도구적 성격이 없지 않았고, 현재는 출산장려정책을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모자보건법의 역사를 이 글에서 다시 한번 정리하는 이유는 시대상, 나아가 그것을 바라보는, 또 그 속에 녹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가의 관점이 모자보건법에 투영되고 있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2026년 오늘 임신중단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봤을 때, 국가는 모자보건법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한편 임신중단을 현재 모자보건법 틀 안에서 계속 바라보면 모성 건강을 위협하는 하나의 요소로만 평가되고 그칠 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런 주장은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이나 새로운 법령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또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었던, '사회경제적 이유'의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의 포함 여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논쟁적일 수 있는 이런 부분에 대한 토론에 이르기는커녕, 현재의 모자보건법과 그것을 둘러싼 관계 당국은 지속적인 '부작위'를 해 왔다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논평에서, 관계 당국이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지연시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면서, '책임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선택'을 해 왔다고 했습니다. '재생산 건강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유예한 권력의 행사'였다는 겁니다. 더 이상 이런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관계 당국이 나서서 책임 있게,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 취지였던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정신을 담아,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에 나서야 합니다. 영원히 '뜨거운 감자'로 모자보건법이 남아있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는 98번째 국정과제로 직접 이 정부가 내걸었던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과 약물 도입', 그 자체를 말 그대로 이행해 달라는 현실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참고한 글
-김선혜. 2020. 모성의 의무에서 재생산 권리로 : 모자보건법의 비판적 검토 및 개정방향 모색. 이화젠더법학 제12권 제2호. 1-44.
-시민건강연구소. 임신중지를 둘러싼 가장 오래된 결정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시민건강논평.
-신유나·최규진. 2020.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의 역사 : 인구정책변화에 따른 의미 변화와 '사회경제적 이유' 포함 논쟁을 중심으로. 비판사회정책 제66호. 93-130.
-장민선. 2015. 건강한 임신·출산 지원을 위한 모자보건법 개정 방향 연구. 현안분석 2015-04. 한국법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1991. 인구정책 3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