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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면 시원해진다? 착각"…소나기 뒤 '습윤 폭염'의 공포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6.07.16 09:00


⚡ 스프 핵심요약

기상 역사상 최초 발령: 2026년 7월 12일, 경북 경산과 포항에 18년 만에 개편된 최상위 단계인 '폭염중대경보'가 사상 처음으로 발령되었습니다.

이중 열돔과 푄 현상의 합작: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를 동시에 덮은 가운데, 지형적 특성(푄 현상)이 더해져 경북 남부가 극한 더위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비 온 뒤 더 무서운 '습윤열': 14일 비가 내린 뒤 습도가 치솟으면서 체감온도가 급상승하는 찜통더위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최고기온 39도 안팎, 최고체감온도 38도 이상이 예상되는 상황. 경북 경산과 포항에 2026년 7월 12일 오전 10시, 한국 기상 역사상 처음으로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됐습니다. 18년 만에 개편된 폭염 특보 체계의 최상위 단계, 그것도 제도 도입 후 단 한 달 만에 현실이 된 겁니다. 기상청장이 직접 브리핑을 열어 건강한 사람에게도 온열질환이나 사망 등 중대한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현저히 높다며 즉각 야외활동 중단을 당부했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비가 온다는데 왜 더 위험하다는 걸까요? 왜 하필 경북 남부였을까요? 그리고 이 더위, 정말 끝이 있긴 한 걸까요?

1. "39도면 그냥 더운 거 아냐?" 착각이 생명을 위협합니다

이번 경보는 단순히 "매우 덥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극한 더위가 체온 조절 시스템을 무너뜨려 열사병·열탈진을 유발하고, 심혈관·호흡기·신장 질환을 악화시킨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건강한 성인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수년간의 국내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한 분석 결과, 체감온도 38도 이상에서는 65세 미만 사망 위험이 평소보다 4%,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은 7% 증가합니다. 65세 이상은 각각 19%와 14%까지 뛰어오릅니다. 국제 보건학술지 《랜싯 카운트다운》 2024년 보고서는 더 충격적입니다. 65세 이상 인구의 열 관련 사망이 1990년대 대비 167% 증가했고, 2023년 야외 신체활동 중 열스트레스 노출 시간은 27.7% 더 늘었습니다.

2. 왜 하필 경산과 포항? 산이 만든 '오븐 효과'

경북 남부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지형 때문입니다. 뜨거운 남서풍이 산을 넘으면서 공기가 압축되며 더욱 가열되는 '푄 현상'이 발생합니다. 경산 하양읍은 11일 오후 39.9도를 기록했고, 포항 기계면은 37.2도까지 치솟았습니다. 기후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클라이밋 다이내믹스》에 실린 한국 폭염 연구는 이를 명확히 지적합니다. "한국 폭염은 지형 효과, 특히 푄 현상에 의해 강화될 수 있다." 여기에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은 한번 들어온 열을 가둬버립니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동아시아 도시의 열섬 효과가 주변보다 평균 1.6~2.0도 높고, 특히 야간에 더 강해진다고 설명합니다. 과거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경산·포항 등 경북 전역이 극한 더위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고 있습니다.

3. "비만 오면 시원해지겠지?"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14일부터 비가 온다는데 왜 기상청은 "찜통더위 계속"이라고 할까요? 2025년 글로벌 과학 저널 융합 연구 논문집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연구가 답을 줍니다. 약한 비가 지나간 뒤 표면 수분이 보충되고 다시 햇볕이 나면, 증발이 활발해지면서 습구흑구온도(WBGT·Wet Bulb Globe Temperature)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극심한 습윤열 사건의 절반 이상이 약한 비와 동반되거나 그 직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기상청도 같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비가 좁은 구역에 짧고 굵게 내린 뒤, 높은 습도 상태에서 강한 햇볕이 다시 나타나면 체감온도가 빠르게 상승할 것"이라고요. 특히 경상권은 비가 늦게 시작되고 양도 적어, 더위가 그대로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4. 열대야가 더 무서운 이유: 밤에도 식지 않는 몸

서울은 11일 밤부터 12일 새벽 사이 올해 첫 열대야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보다 12일 늦은 기록이지만,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미국지구물리학회(AGU)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인 《JGR 애트머스피어스》에 실린 한국 열대야 연구는 밤 더위가 단순히 낮 열의 잔재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남서풍을 타고 유입된 따뜻하고 습한 공기, 높은 수증기, 장파복사 증가가 결합해 별도의 메커니즘으로 강화된다"는 겁니다. 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밤에 체온을 낮추지 못하면 심혈관·호흡기·신장 부담이 누적되고, 다음날 열스트레스 취약성이 커진다고 경고합니다. 인천, 강릉, 청주, 광주, 포항, 부산,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열대야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낮만 조심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밤도 위험합니다.

5. '이중 열돔'에 갇힌 한반도: 사막 열기와 바다 습기의 합작

이번 더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기상청은 "상층의 티베트고기압과 중·하층의 북태평양고기압이 동시에 한반도를 덮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중 열돔' 혹은 '이중 고기압 이불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클라이밋 다이내믹스》 논문은 이를 한국 폭염의 전형적 패턴으로 분석합니다. "서태평양 아열대고기압의 비정상적 확장과 상층 고기압성 순환, 정체 패턴이 결합하면 동아시아 고기압성 이상이 강화된다." 북태평양고기압은 지상부터 5킬로미터 상공까지, 티베트고기압은 10~15킬로미터 상공에서 열기를 묶어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남쪽에서 뜨겁고 습한 바람까지 불어오면서 폭염의 기세가 더 거세졌습니다.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더 큰 계절 내·행성 규모 순환 변화 속에서 조직된 결과입니다.

6. 체감온도 38도 vs 기온 39도: 왜 둘 다 기준인가

새 폭염중대경보 기준이 최고기온 39도 '또는' 최고체감온도 38도를 함께 쓰는 이유는 뭘까요? 노출 과학 및 역학 분야를 다루는 《저널 오브 익스포저 사이언스 앤 엔바이런먼털 에피데미올로지》에 실린 서울·부산 연구가 답을 줍니다. "단순 기온보다 열지수, 체감온도, WBGT 같은 복합지수가 건강 영향을 더 잘 포착한다. 특히 부산에서는 WBGT가 사망과 가장 강한 관련성을 보였다." WBGT는 온도뿐 아니라 습도·복사·바람을 함께 반영하는 국제 표준 열스트레스 지표입니다. 바닷바람이 있다고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습도까지 합친 체열 부담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기상청은 두 기준을 동시에 제시한 겁니다.

7. 일회성 이변 아니다: 아시아는 이미 뜨거워지는 중

이번 폭염을 "올해만 특별히 심한 이상기후"로 보면 큰 그림을 놓칩니다. 세계기상기구(WMO)가 공식 발표한 《2024 아시아 기후 현황》 보고서는 충격적입니다. "아시아는 전지구 평균보다 거의 두 배 빠르게 온난화 중이며, 2024년 아시아는 관측사상 가장 덥거나 두 번째로 더운 해였다." 보고서는 동아시아에서 2024년 4월부터 11월까지 장기 열파가 이어졌고, 한국도 4월·6월·8월·9월에 월평균 기온 기록이 경신됐다고 명시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바다입니다. WMO는 2024년 아시아의 해수면온도가 기록적으로 높았고, 해양열파 면적도 사상 최대였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일본 인근과 황해·동중국해 주변 해역에서 강한 해양열파가 보고됐습니다. 주변 바다가 더 따뜻하면 대기 중 수증기 공급이 강화됩니다. 비 온 뒤에도 끈적한 더위가 쉽게 가시지 않는 배경입니다.

8. "습구온도 35도"는 이론, 실제 위험은 훨씬 낮은 온도에서 시작됩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습구온도 35도'는 이론적 생존 한계입니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다학제적 과학 저널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연구와 미국항공우주국(NASA) 설명자료는 경고합니다. "실제 사망과 건강 피해는 그보다 훨씬 낮은 습구온도에서도 발생한다." 즉 "아직 40도도 안 됐는데?"라는 생각은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겁니다. 2023년 《네이처(Nature)》 논문은 더 구체적입니다. "습한 기후대 도시에서는 도시가 단지 더 뜨거운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한 습윤열을 만들 수 있으며, 그 결과 도시 주민은 여름마다 추가적인 위험 열스트레스 일수 2~6일을 경험할 수 있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처럼 장마·고온다습·고밀도 도시화가 겹친 환경에서는 이 결과가 특히 중요합니다. 폭염 대응은 나무·차양·통풍뿐 아니라 습도 관리와 야간 냉각 회복력을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9. 누가 먼저 쓰러지나: 에어컨 없는 사람, 야외 노동자, 독거 어르신

이번 경보는 불평등 이슈이기도 합니다. 유엔 산하의 국제노동기구(ILO)는 과도한 열이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주며 열탈진·열사병·사망과 장기적 만성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정리합니다. 건설·배달·물류·야외 서비스 노동이 바로 가장 우려되는 부문입니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통계에 따르면 경산시는 독거노인 1만 5,778명, 기초생활수급자 1만 6,475명, 장애인 2,146명 등 총 3만 4,399명의 폭염 취약계층이 거주합니다. 포항시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세계은행은 동아시아에서 도시 열섬과 극한열이 생산성, 건강, 거주적합성에 모두 타격을 준다고 보고합니다. 에어컨 접근성, 주거 단열, 그늘, 휴식권, 이동노동자의 작업통제권이 부족한 계층이 먼저 타격받습니다. 폭염은 단순한 기상재난이 아니라 노동·복지·도시정책 재난입니다.

10. 앞으로 어떻게 될까: 더 자주, 더 길게, 더 습하게

이번 더위는 13일 절정을 찍고 14일 비가 내리지만, 기상청은 명확히 말합니다. "앞으로 기온은 낮아지기보단 유지·강화되는 추세로, 폭염특보도 역시 유지되거나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폭염중대경보 역시 경우에 따라 확대되거나 지역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기상청이 2016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만약 폭염중대경보가 당시 존재했다면 경산에는 연평균 3.1일 발령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국 기상특보 구역 중 가장 많은 수준입니다. 2018년 '21세기 최악의 더위' 때는 경산에서 8일 연속 유지됐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인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는 아시아의 고온·습윤 환경에서 열스트레스 위험이 이미 중간 이상 수준이며, 도시 열섬이 이를 2도 이상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동아시아 몬순권·연안 도시권이라는 위치상 IPCC가 경고한 고온다습 연안·도시형 위험대의 전형적 사례입니다.

39도의 경고, 이건 단순한 더위가 아니었습니다. 이중 열돔, 푄 현상, 습윤열, 열대야, 그리고 비 뒤의 찜통. 한국은 이제 습윤 폭염 시대의 경보 체계·노동 규범·도시 설계·보건 대응을 동시에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기상청장의 말을 다시 새겨야 합니다. 폭염중대경보는 단순히 날씨가 매우 덥다는 의미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에게도 온열질환이나 사망 등 중대한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현저히 높은 상황입니다.

중단하세요. 이동하세요. 확인하세요. 이 세 가지 수칙이 생존을 결정합니다.


Deep Dive Q&A
Q1. '폭염중대경보'는 기존의 폭염경보와 무엇이 다르며, 왜 지금 도입되었나요?

A1. 기존 폭염경보는 최고체감온도 35도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때 발령되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체감온도가 38도에 육박하는 초극한 폭염이 빈발하자, 기존 경보만으로는 실제 치명적인 위험을 경고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번에 발령된 '폭염중대경보'는 최고기온 39도 또는 최고체감온도 38도 이상인 날이 하루만 예보돼도 발령되며, 노약자뿐만 아니라 건강한 일반 성인조차 야외 활동 시 온열질환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재난 상태를 뜻합니다.

Q2. 여름철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시원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기상청은 비가 온 후 더 위험하다고 경고하나요?

A2. 이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등에서도 경고한 '습윤열' 현상 때문입니다. 소나기나 짧은 비가 내린 직후 다시 햇볕이 내리쬐면, 지표면에 흡수된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대기 중 습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립니다. 습도가 높아지면 인간의 몸은 땀을 흘려도 증발하지 않아 체온 조절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즉, 기온 자체는 약간 낮아지더라도 체감온도를 결정하는 복합 지표가 폭등하여 인체에 가해지는 열 스트레스는 배가됩니다.

Q3. 경북 경산과 포항이 이번 첫 폭염중대경보의 타깃이 된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요?

A3. 지형적 요인(푄 현상)과 분지 구조의 결합 때문입니다.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습한 바람이 대관령이나 인근 산맥을 넘으면서 공기가 압축되어 더욱 고온건조해지는 '푄 현상'이 이 지역에 집중됩니다. 여기에 경산과 포항 등 경북 남부 지역은 열을 가두는 분지 형태를 띠고 있어, 낮 동안 발생한 오븐 효과가 밤 시간대까지 이어져 식지 않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