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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미로? '마약과의 전쟁'이 놓치고 있는 것 [취재파일]

제희원 기자

입력 : 2026.07.11 09:28

한 해 마약 사범 2만 명, 죗값 치른 이들은 지금 어디에?


마약 보도는 대개 자극적입니다. 마약에 취해 차를 몰다가 사고를 낸 장면, 도심 한복판에 쓰러진 투약자의 모습, 불법 투약 현장을 급습하는 단속반의 모습은 대중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습니다. 마약을 한 '악인'과 이를 검거한 '선인'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서사는 사건사고 기사의 전형이라 할 만큼 이제는 익숙한 도식이 됐습니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한 해 2만 명 규모라는 마약 사범들은 죗값을 받은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국가가 '출구 없는 미로'라 규정한 마약에 이미 손을 댄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회복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가. 이번 취재는 이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의류 디자이너였던 30대 A 씨는 3년 전 서울의 한 클럽에서 합성마약에 손을 댔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로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고 호기심에 삼킨 알약이, 이른바 '클럽용 마약'으로 불리는 엑스터시였습니다. 호기심의 대가는 컸습니다. 수사와 재판, 10개월간의 구치소 수감 끝에 사회로 돌아온 A 씨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투약 경험을 '평생 지워지지 않을 후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인터뷰이 A 씨 (마약 투약 후 구치소 수감), 제희원 기자 
A 씨 / 마약 투약 경험자
"제가 잘못해서 받는 처벌이긴 하지만 정말 멘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저보다 가족이 더 힘들어하더라고요. 내 자식이 마약 (투약)이라는 죄를 짓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과정, 사회에 나왔을 때 손가락질 받는 걸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고 다시는 하면 안 되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죠.

하지만, A 씨의 구치소 생활은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마약 사범을 일반 형사 사범과 분리 수용하기는 하지만 재범자와 초범자, 판매자와 투약자가 뒤섞여 수감되는 '약방'의 현실은 단약의 의지를 높이기보다 투약의 유혹이 더 커지는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A 씨 / 마약 투약 경험자
"저에게는 조금 충격이었어요. 죄를 짓고 들어왔는데 반성의 기미를 보지 못했고…. 오히려 마약했던 것에 대한 무용담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고 공유하고. 밖에 나가면 내가 아는 사람이 누구 있는데 소개해 준다는 식의 대화를 자주 듣게 되었어요."

전문가들은 마약 사범을 단순히 처벌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현재의 교정 방식이 오히려 재범률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단순 투약자의 경우, 격리보다 '치료'와 '재활'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치료 보호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고, 수감 후의 재활은 '돈과 의지'가 있어도 어렵습니다. 중독 전문 의료진과 병상 부족, 재활센터 부족이 모두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안준형 / 마약 전문 변호사
"마약과의 전쟁 대상이 판매자나 생산자가 되는 건 이해를 하는데, 투약자들과 전쟁을 하는 상황이 된 거죠. 투약한 사람들은 질병 코드가 나오는 의존증 환자이기도 한데, 이들과 나라가 자꾸 싸우는 모양새가 되니까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도 투약자를 비난하게 되는 것 같고요.

단약 의지가 있고, 돈이 있어도 갈 데가 없어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수밖에 없는데, 정신질환자와 마약 재활이 필요한 사람은 완전히 치료 방법이 다르잖아요. 그런 병원조차 입원하려면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게 현실이죠."

마약 범죄 

최근 5년간 마약 사범 평균 재범률 45.6%…끊어진 회복의 다리

끊어진 회복의 다리는 고스란히 재범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5년간 마약 사범 평균 재범률은 45.6%로 둘 중 한 명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가 적발됐습니다. 투약 중단자 중에서 3년 이상 단약한 비율은 17%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재범의 굴레에 갇힌 마약 사범들의 현실을 뒷받침합니다.

전문가들은 마약 대응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단속 중심의 '사법적 처벌'에서 치료와 재활 중심의 '사회 복귀'로 전환되어야 높아지는 재범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처음 마약을 접하는 연령대가 10대까지 낮아지고 있고, 청소년과 청년층의 마약 범죄 비율이 높아지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낙인'보다 '치료와 교정'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한국형 약물법원, 왜 필요한가

1989년에 설치된 미국의 '약물법원(Drug Court)'이 참고할 만한 사례입니다. 높은 재범률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은 사법적 처벌을 앞세우기보다 적발과 동시에 이들에 대한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약물법원을 미 전역에 4천여 곳까지 확대했습니다. 단순 투약자에게는 징역살이 대신 전문적인 치료를 강제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수했을 때는 선고를 유예해 주는 식입니다. 판사가 매주 투약자의 치료 경과를 보고 받는 등 법원이 주체가 되어 중독자의 회복과 치료 과정을 살피는 제도입니다.

한국형 약물법원 도입 논의도 이제 첫발을 뗐습니다. 핵심은 '치료 조건부 사법 처리'의 법제화입니다. 단순히 형벌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판사가 치료 전문가들과 팀을 이뤄 중독자의 재활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구조입니다. 기존의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있지만, 치료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도 미국처럼 판사가 치료 과정을 추적하는 약물법원이 설치되면 중독자의 치료 동기와 회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마약이 '출구 없는 미로?' 치료와 회복으로 가는 길

마약 중독
이번 취재에서 저희는 한때 마약 중독으로 삶의 바닥까지 추락했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감히 어떤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을 지난 이들이 이제는 자신과 같은 고통 속에서 헤엄치는 이들의 손을 붙잡아 주는 모습은 경이롭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깊은 절망을 지나온 이들이었기에,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약 중독'이라는 미로의 입구를 막는 철저한 단속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다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출구를 열어주는 일 또한 우리 사회의 몫입니다. 마약은 점점 더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중독이 쉬워진 만큼, 치료와 회복의 기회도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게 이번 취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공통된 목소리였습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끝내 놓쳐서는 안 될 한 축은 중독자의 '회복'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