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한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참가자들이 오가고 있다.
"볼펜 한 자루도, 지갑도, 명함도 못 들고나왔습니다. 사무실 안에 다 있어요. "
대한우슈협회 관계자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배어 있었습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한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봉쇄 시위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무실을 둔 대한체육회 산하 9개 종목단체 관계자들은 그날 이후 자신들의 책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 단체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대한체육회가 마련한 벨로드롬 내 임시 사무실에서 노트북 한 대에 의존해 겨우 업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급한 문제는 국제대회 파행입니다.
대한펜싱협회는 오는 22일 홍콩에서 개막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오상욱을 비롯한 24명의 선수를 파견합니다.
협회는 훈련용 칼을 긴급 수입했으나 물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협회 관계자는 "보통 선수 1인당 연습용 칼 5자루를 지급하는데, 지금은 2∼3자루밖에 못 준다"며 "메탈 재킷은 아예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9월로 다가온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준비는 "아직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대한산악연맹은 국가대표·청소년·꿈나무 유니폼과 장비가 모두 사무실 안에 있습니다.
7∼9월 국제대회 참가를 위해 후원사에 다시 제작해 달라고 읍소하고 있지만 여의찮습니다.
연맹이 추산한 피해액은 7억 원 이상이며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계속 늘어날 전망입니다.
8월 방콕 세계선수권과 9월 아시안게임을 앞둔 대한세팍타크로협회 역시 새 유니폼이 사무실에 갇혀 재구매를 검토 중입니다.
대한수중핀수영협회는 지난달 인천에서 치른 세계선수권대회 행정 처리 지연으로 세계연맹으로부터 벌금 1천500만 원을 부과받았습니다.
몇몇 국가는 정세 불안을 이유로 이 대회 출전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하나 절박한 문제는 임금과 수당 미지급입니다.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은 지난달 27일 부산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 '브레이킹 K' 입상자에게 상금과 수당을 제때 지급하지 못했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코치·선수 수당은 아직도 미지급 상태로 생계와 직결한 위협을 당하는 것입니다.
지급을 못 하는 이유는 법인 계좌 이체에 필요한 OTP, 법인 인감증명서, 법인 도장이 모두 봉쇄된 사무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에서 OTP를 재발급받으려 해도 법인 인감이 필요한데, 그 인감이 사무실 안에 있어 도돌이표입니다.
직원 5월 급여는 늦게 지급됐고, 6월 급여는 아직입니다.
대한당구연맹 관계자는 "후원 계약서에 도장을 못 찍어 후원금 입금 자체가 안 되고 있다"며 "2억 원짜리 입찰도 제때 계약을 못 해 그대로 사업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자격증·단증 발급 수수료는 다수 협회의 핵심 운영 수입원입니다.
대한수중핀수영협회는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발급 업무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대한우슈협회는 카드 단증 발급기와 용지를 새로 사는 데 1천만 원, 발급 지연에 따른 수익 손실 1천만 원을 이미 감내하고 있습니다.
이들 단체는 최소한 사무실 PC와 자료만이라도 반출을 허용해달라고 호소하지만, 사태가 언제 해결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대한체육회가 단체별로 지급한 지원금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현재까지의 금전적 손실을 메우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어차피 사무실도 봉쇄됐으니까 출근 안 해도 되니 좋겠다"는 말은 상처로 돌아옵니다.
계산기 하나까지 옆 사무실에서 빌려다가 업무를 볼 정도라 효율은 이미 바닥입니다.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주말 근무가 이어지며 직원들은 점점 피로감을 호소합니다.
한 체육단체 사무처장은 "지금은 젊은 사무처 직원들이 그만두지나 않을지 그게 가장 걱정"이라고 토로하고, 다른 단체 사무처장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대한당구연맹 사무처장의 호소는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의 절박한 마음을 대변합니다.
"저희가 점점 애물단지가 돼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또 잊힐까 봐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결국 저희만 피해자로 남는 상황인 거죠. "
(사진=연합뉴스)